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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몸부림…할인점 '몸 불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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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해 백화점은 두 개가 새로 생겼다. 반면 할인점은 30여개가 늘어났다. 할인점은 올 연말까지 4∼5개가 더 생겨날 예정이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들은 21일 물건 사러 오는 사람들이 지난해보다 백화점별로 4∼6%, 매출액은 3∼4%씩 줄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할인점은 업체별로 매출액이 평균 7∼15% 늘어났다.

깊은 불황 속에 백화점과 할인점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백화점은 빠져 나가는 손님 잡기에 안간힘이고, 할인점들은 이 기회를 틈타 백화점 손님까지 끌고오기 위해 유명 브랜드 판매에 나서고 있다. 양대 유통업종인 백화점·할인점의 무한경쟁이 재현된 것이다.

◆ 발버둥치는 백화점

지난주 토요일 오전 9시, 경기도 일산 그랜드 백화점 정문 앞 광장은 갑자기 장터로 변했다. 계란 한 판에 3000원, 굴비 한 두름에 1만원, 웬만한 숙녀화.넥타이.핸드백 등 잡화도 1만원 아래로 팔렸다. 이 백화점이 매주 토요일 벌이는 오전 개미장터다. "문을 여는 시간까지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영업행사"라는 게 백화점 측의 설명이다.

경방필백화점은 손님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는 '보따리 백화점'을 선보인다. 맨 먼저 22~25일 경기도 용인의 경방 공장에 500평의 특설매장을 마련하고 짐보따리를 푼다. 4만9000원짜리 전자레인지, 7000원짜리 드레스셔츠 등 미끼상품도 있지만 대부분 백화점에서 팔던 물건들을 그대로 들고 나가 판매하는 것이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느니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없는 지역으로 판매행사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백화점들의 판촉전은 전쟁 양상이다. 이들은 "가격파괴를 넘어 아예 가격 포기까지 간 상황"이라며 "요즘 백화점 업계는 '서바이벌 게임'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불경기로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중소 백화점들은 매출액이 두 자리 숫자로 줄어들 것이라고 울상이다. 그래서 백화점이란 자존심까지 내팽개치고 3만원짜리 양복부터 1만원짜리 패션잡화를 팔거나 중고품 거래에 손을 대는 중소 백화점들도 적지 않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대형 백화점들도 최근 '생존형 행사'가 부쩍 잦아졌다. 롯데 백화점은 '헌 코트를 가져오면 새 코트로 바꿔주기' 행사를 31일까지 한다. 여성 의류 브랜드 13개와 함께 해당 브랜드의 헌 코트를 가져오면 새 상품을 20% 싸게 판다는 것이다.

3대 백화점들은 이런 '헌 상품 보상'행사를 품목만 달리해 일제히 벌이고 있다. 현대 백화점 천호점은 침대,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은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등의 보상판매에 들어간다.

백화점 근처의 극장.미장원.음식점.사진관과 연계 할인해 주는 협력마케팅 행사 등,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어떤 비방(秘方)이라도 동원하는 형편이다.

◆ 할인점, "난 이젠 고급화로 간다"

회사원 송모(35·서울 신사동)씨는 양복을 사러 할인점으로 간다. 그는 "가격이 합리적이고, 파크랜드·TNGT 등 믿을 만한 브랜드에다 맵시도 괜찮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측은 이달 중순까지 신사정장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7% 늘어났다고 밝혔다. 드레스셔츠는 25%나 늘었다. 이마트·홈플러스 등 다른 할인점들도 신사복 판매가 10% 안팎 증가할 것으로 본다. 신사복의 터줏대감인 백화점의 올해 신사정장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 정도 역신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할인점들이 백화점 업계의 문턱을 엿보고 있는 것은 신사복 뿐만이 아니다.

최근 문을 연 이마트 용산역 점에는 톰보이·베네통 잡화·에스쁘리·옹골진·인터크루·제이폴락 등 백화점에나 있을 법한 브랜드들이 매장 입구부터 줄지어 들어섰다. 또 유기농 와인 등 비싼 와인들이 들어찬 와인멀티숍, 유기농 식품숍 등 비싼 제품들만 모은 전문점들도 눈에 띈다.

홈플러스는 올해 엔포리오 아르마니·세이코·스와치 등 이른바 백화점의 브랜드 시계 전문점을 유치했다. 올 여름엔 아르마니·페가가모 선글라스 행사까지 했다. 이젠 웬만한 할인점에서도 아디다스·나이키·리복 등 고급 스포츠용품을 신제품에서 아웃렛 제품까지 모두 구할 수 있다.

할인점에 들어선 이 점포들은 대부분 대리점 형식의 임대매장. 할인점 측은 상설매장으로 백화점보다 싸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들은 "유명 브랜드들은 백화점보다 별로 싸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홈플러스 설도원 상무는 "눈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값은 싸지만 품질이 어중간한 할인점 상품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유명 브랜드를 유치하기 시작했다"며 "고급화 마케팅 전략에 따라 과거 백화점을 찾던 소비자들이 할인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부쩍 는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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