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못' 만 보이는 '샤론의 망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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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6일 실시되는 이스라엘 총리선거는 중동평화의 장래를 결정할 중요한 선거다.

여론조사에서 리쿠드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노동당의 에후드 바라크 총리를 20%포인트 가까이 앞서고 있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샤론의 승리가 확정적이다.

극우파인 샤론이 총리가 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아랍권 사람들은 이번 선거를 한 편의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4개월 전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샤론은 1999년 5월 선거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총리가 바라크에게 패배하자 한시적으로 리쿠드당을 맡은 일종의 관리자였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이번 선거에서 의원선거를 함께 실시하지 않는 데 불만을 품고 출마를 포기하자 샤론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여기에 이스라엘 국민들의 평화협상 부진에서 오는 바라크에 대한 실망,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로 인한 안보 불안이 샤론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샤론?타협을 모르는 전형적인 군인이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부터 군인으로 활약해온 샤론은 여러 차례 중동전에서 혁혁한 무공(武功)을 세웠다.

특히 이집트군의 선공(先攻)으로 시작된 73년 제4차 중동전에선 이스라엘이 열세인 상황에서 기갑부대를 이끌고 수에즈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 외곽 1백㎞까지 진격함으로써 이집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같은 해 샤론은 군복을 벗고 크네셋(의회)에 진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정치인으로서 샤론은 사고뭉치다. 국방장관 시절인 82년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을 위해 레바논 침공을 감행,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습격하도록 '유도' 함으로써 양민 8백여명을 학살했다.

90년 주택건설장관으로 취임해 제3차 중동전 때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대대적으로 건설했다.

18만명에 달하는 정착민 처리문제는 평화협상의 난제 중 하나다.

지난해 9월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사원을 방문해 인티파다를 촉발, 지금까지 3백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샤론은 자신이 총리가 되면 93년 오슬로협정과 98년 와이조약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중동평화협상의 '사망' 을 의미한다.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확실히 한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유지하고 점령지의 42%만 팔레스타인에 넘겨준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스라엘 귀환을 일절 불허한다, 제3차 중동전에서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샤론의 입장을 아랍측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이스라엘 속담에 "가진 것이 망치밖에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는 말이 있다.

지금 이스라엘 국민들은 바라크의 느린 삽질보다 샤론의 속시원한 망치질을 신뢰하고 있다. 그러나 망치로 못 박는 식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이스라엘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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