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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원로들 어떻게 지내십니까] 2. 문학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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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27일 김기창 화백의 장례식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구상(具常.82)시인은 조시를 발표했다.

'체구는 장대하나 숫되기가 소년같아/만나는 사람마다 허울벗게 하셨으니/가시매 그 예술 그 인품 더 기리고 그리네' 라고.

지난해 소설가 황순원.시인 서정주를 떠나 보낼 때도 역시 그들의 문학세계를 기리며 한국문학 1세기의 마감을 예감했던 구시인은 문단 원로로서 건재하다.

한강을 바라보며 홀로 시 작업에 몰두하던 여의도 아파트의 집필실 관수재(觀水齋)를 지난해 비우고 지금은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격동기 한국 현대사에 휩쓸리지 않은 양심과 기독교 신앙심으로 올곧게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50번째 시집을 내어 창작시집 권수로 최다를 기록한 조병화(趙炳華.80)시인도 건재하다.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집필실 편운재(片雲齋)로 요즘도 꼬박꼬박 '출근' 해 문예지에서 청탁받은 시들을 쓰고 있다.

'꽃' 의 김춘수(金春洙.79)시인 역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서정시.관념시.무의미시 등의 시 세계를 두루 실험하며 항상 한국 현대시의 전위에 섰던 그 실험 정신이 오늘도 지칠 줄 모르고 샘솟아 매달 4~5편의 신작시를 발표하고 있다.

80평생 이렇게 왕성한 창작욕은 처음이라는 김씨는 앞으로는 자신이 지난 50여년 동안 실험했던 시 세계를 종합해 새로운 경지를 열겠다 한다.

소설 창작은 치밀성과 끈기를 요구해서 그런지 원로 소설가들의 활동이 미미한 편이다. 1989년 '토지' 12권 완간으로 한국 소설사에 금자탑을 쌓아올린 박경리(朴景利.74)씨는 강원도 원주에 세운 토지문화관에서 살고 있다.

요즘은 집필이나 강연은 가급적 삼간 채 '토지' 일본어 번역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시야를 좀 넓혀보면 '인연' 의 수필가 피천득(皮千得), 동시.동요 작가 윤석중(尹石重)씨가 지난해 나란히 구순(九旬)잔치를 벌였다. 칠순이후 글을 쓰지않고 있는 피씨는 귀로는 계속 문학작품을 '읽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오디오 북을 주로 들으며 음악 감상도 즐긴다.

'어린이날 노래' 를 지은 우리 아동문학사의 산증인 윤씨는 요즘도 그가 창립한 새싹회와 함께 어린이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동시를 계속 짓고 있으며 또렷또렷한 기억으로 70여년 전의 아동문학계와 자신의 활동을 회고한다.

시조단에서는 '백자부' 의 김상옥(金相沃.81), '산딸기' 의 이태극(李泰極.88)씨가 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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