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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네팔 의료봉사단 르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설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5일 오전 10시, 네팔 카트만두의 외곽 탄코트의 마따띠르타 보건소.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유채꽃밭 사잇길로 담요같은 숄을 걸친 여인, 슬리퍼를 신은 노인, 맨발의 아이들이 모여든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가 파견한 의사.간호사.약사.대학생으로 구성된 11명의 의료봉사단(단장 황의두.37.대전보훈병원 응급실장)은 진료소와 약국을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천막으로 차려진 임시 진료소에는 김안식(51.외과전문의).황의두.성보영(32.여.충남대 내과레지던트)씨가 자리를 잡았다.

통역은 국제기아대책기구 네팔지부장 오서택(37)씨와 현지에서 사회사업 활동을 하는 박성규(42).김홍국(39)목사가 맡았다.

"머리.가슴.배가 아파요. "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잘 안들려요. " 진료소마다 '둑쳐(아프다)' 로 요란하다.

네팔은 히말라야의 나라.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대부분 산간 부락이다. 그래서인지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는 여인들이 많다. 金목사는 "여인들이 생산과 가사를 도맡기 때문에 30대면 벌써 늙어버린다" 고 설명한다.

세 명의 의사가 처방전을 내자 약국이 바빠진다. 원미영(46.여.간호사).황경애(25.여.충북대 약학대학원).이은혜(21.이화여대 약학3)씨는 조제, 조선영(28.여.간호사)씨는 주사 전담이다.

이곳에 보건소가 세워진 것은 지난해 9월. 그러나 대규모 의료진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현지인 건강보조사가 의사 노릇을 해왔다.

오후 4시30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조바심을 낸다. 행여 진료를 받지 못할까 앞 사람 등에 배를 붙여 줄을 바짝 좁힌다. 구충제 투약 담당인 강남순(31.여.간호사)씨와 김경희(22.여.충남대 간호학4)씨는 혹시 빠뜨린 아이가 있나 살핀다. 이날 2백50여명의 주민이 진료를 받았다.

의료봉사 이틀째인 26일. 봉사단은 김홍국 목사가 운영하는 조이하우스를 찾았다. 여기에는 지진이나 산사태로 부모를 여읜 고아 1백44명이 있다.

성보영씨는 "중이염과 각종 피부병을 앓는 아이가 많다" 고 말했다. 이들 고아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적 치료보다 정신적 위로. 그래서 봉사단은 이들과 족구.배구를 하며 함께 정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27일에는 새벽부터 서둘러 다딩베시로 향했다. 카트만두에서 꼬불꼬불 계곡 길을 따라 세 시간. 마을 주민들은 벌써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난생 처음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덴바 따망(35)은 한국에서 의료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에 에베레스트 인근 띠쁠링에서 주민 20명을 데리고 5일간을 걸어서 왔다. 환자들은 대부분 고산족이어서 2~3일 걸어서 오는 것은 보통이다.

네팔 방문이 세번째인 황의두 단장은 "백내장과 신부전증 환자의 경우 단시간에 치료할 수 없어 무척 안타까웠다" 고 말했다.

봉사단이 이곳에서 28일까지 진료한 주민은 모두 1천4백명. 한국 의료진의 방문을 호소했던 지역 청년회장 삼부 씽 터구리(28)는 봉사단원에게 일일이 '당네밧(고맙습니다)' 을 연발했다.

농촌개량운동을 지휘하는 그는 "주민들이 병명도 모르고, 치료도 못받고 죽어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고 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자비를 들여 봉사단을 지원한 이은혜씨는 "보람이라기 보다 오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고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을 출발한 11명의 '네팔사랑 2001' 봉사단은 10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31일 귀국한다.

포카라=박종권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1989년 국내 최초로 해외를 돕는 해외구호 비정부기구(NGO)로 설립됐다. 세계 50여개국에서 2천1백여명이 활동 중인 UN공인 국제기아대책기구의 협력단체다.

한국인 봉사단은 40명. 네팔.몽골.우즈베키스탄.미국.독일 등 24개국에 파견됐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지구촌 이웃들을 구호하고 개발사업을 통해 자립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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