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몽골리안 루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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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프리카에서 진화를 거듭한 인류는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가며 흑인.백인.황인종으로 분화됐다.

강렬한 태양의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빙하기의 유럽으로 들어간 집단이 백인종, 다시 그곳에서 아시아로 진출한 집단이 황인종의 조상이 된 것이다.

황인종, 즉 몽골로이드는 약 4만년 전 강한 바람이 부는 아시아 내륙 초원에서 황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 툭 튀어나온 광대뼈 등 지금의 형질을 얻었다.

시베리아와 더 북쪽의 얼어붙은 툰드라까지 진출한 이들은 1만3천년 전 알래스카를 거쳐 신대륙인 북미와 남미의 끝까지 내려가 아즈텍.마야.잉카 문명을 이뤘다.

수렵생활에서 벗어나 몽골로이드들은 4천년 전부터 말 타는 법을 배우고 청동기문화를 받아들이며 만주벌판에서 몽골고원과 카자흐초원, 흑해초원을 거쳐 헝가리까지 연결되는 유라시아 초원에 유목문화를 세운다.

이들은 로마나 중국의 정착 제국들과 끊임없이 부닥치며 민족의 대이동을 낳기도 했다.

이 유목민족은 13세기 칭기즈칸에 이르러 세계 대제국을 건설하고 쇠락했다.

남미의 문명들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15세기 백인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목민족과 문화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KBS-1TV에서 다음달부터 8부작 대하다큐멘터리 '몽골리안 루트' 를 방영한다.

몽골로이드의 위와 같은 이동과 확산을 추적해 중국과 유럽 등 정착문명 위주로 쓰여진 역사에서 사라진 유목민의 삶과 꿈을 그들의 관점에서 복원해 보자는 것이다.

이동전화와 인터넷으로 집과 국경, 현실과 가상에 얽매임 없이 떠도는 신유목 시대인 21세기의 비전을 고대 유목사회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며 우리 민족의 뿌리인 몽골로이드를 따라 북방 고대사에 대한 향수에도 불을 지피자는 것이다.

유목민들에게 국경은 없었다. 남길 재산도 없었다. 호혜시장 원리나 다른 부족의 안전한 이주를 위한 소도(蘇塗) 네트워크 등 나름의 질서에 따라 유목사회는 유지됐다.

바람처럼 늘 자유롭게 떠다니다 자신의 뼈만 남기고 죽어가면서도 사회와 자연계의 질서를 지켰던 그들의 삶에서 오늘 신유목 사회의 덕목을 추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료(史料)부족으로 삼국시대의 형성기, 고작해야 2천년 이내로 좁혀진 우리의 역사적 관심을 반만년, 단군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상상력을 몽골리안 루트는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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