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안간힘 국내기업들, 외국자본에 "24조원 매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기업 계열사인 A사 Y전무는 지난 설 연휴에 하루도 쉬지 못했다. 사흘 내내 A사 지분 인수를 위해 서울로 날아온 미국계 투자회사 관계자들과 가격 협상을 벌였다.

2조원의 부채를 대폭 줄이지 않고는 올 상반기를 넘기기가 어려운 형편이라 협상에 회사의 생사를 걸어야 했다.

"가격만 맞으면 경영권까지도 넘겨줄 수 있다고 했어요. 주인이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살아야지요. "

새해 들어 한국 기업들이 외국 자본을 상대로 자산을 '자산을 파는 '셀 코리아(Sell Korea)' 가 본격화하고 있다.

잇따라 매물로 내놓고 있다. 현대그룹 등 대기업들이 계열사는 물론 보유 주식.사업.공장.건물 등을 처분하고 있다. 빚을 줄이고 현금을 충분히 확보해 언제 닥칠지 모를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인터넷 벤처의 대표 선수급이었던 옥션.쌍용정보통신.한글과컴퓨터의 경영권이 외국업체에 넘어갔으며, '경영난에 빠진 수백개의 닷컴 기업들도 매물로 나와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외국계 기업에 팔린 주식.부동산 등이 4조6천억원어치에 달했고, 시장에 나온 매물은 22조~24조원어치(매매 희망가격 기준)나 됐다. 조사의 한계를 감안하면 실제 매물은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쏟아지는 매물들은 대부분 외국 자본이 사들이고 있다. 자금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나 펀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해외 자본의 국내 부실 자산 인수는 국내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사는 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서는 구매자 위주의 시장구조상 국내 기업들의 자산이 헐값에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산업부.정보과학부.국제경제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