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당] 한국 책 드문 외국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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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이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자기나라의 특색을 조사해 발표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이번 기회에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와 강산을 알려 '민간외교' 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꼈다. 아시아와 관련한 서적 중 90% 이상이 일본과 관련한 서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십권에 불과한 한국 관련 책자들은 대부분 한국전쟁에 대한 것으로, 20~30년 전에 출판된 빛바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최근 출간된 책뿐만 아니라 '드래곤 볼' 같은 만화책들도 영어로 번역돼 있었다.

도서관 사서는 "베스트셀러 등 꼭 필요한 책이 아니면 대부분 기증받고 있다" 며 "일본인들은 책을 만들면 번역을 해 계속 기증한다" 고 했다.

그 책들이 일본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근처 대형서점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큰 서점에 한국 관련 서적은 1백권 정도였고, 그것도 한국어 교재와 동화책 몇 권을 빼면 역시 한국전쟁에 대한 책이었다. 동화책도 한글판으로 찾는 사람이 없어 먼지만 쌓여 있었다.

고등학교 때 작문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한용운.김소월의 문학이 타고르나 괴테 등에 비해 결코 뒤질 게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없는 이유는 번역판이 부족해 외국인들이 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정부나 출판 담당자들은 베스트셀러나 훌륭한 작품을 번역해 외국 도서관 등에 기증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들이 우리에 대해 알고 싶은데도 보여줄 정보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승현.인터넷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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