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무적자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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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무적자가 되는 경우는 크게 나눠 세 가지다.

본인이 주민등록 말소를 자청하거나, 은행.카드사 등 채권기관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직권 말소를 요청하는 경우, 일제조사에 의한 말소 등이다.

이 가운데 부도가 나거나 실직해서, 또는 빚 보증을 섰다가 막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돼 무적자를 자청한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일단 빚 독촉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악화하면서 은행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가정이 늘면서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 규모는 2조3천9백69억원(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다섯달새 6천5백억원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도피형 주민등록 말소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이나 신용카드사 등이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동사무소에 채무자의 주민등록 직권 말소를 요청해 본인도 모르게 무적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사라진 경우 채권금융기관이 단독으로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선 주소지에 채무자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직권말소 절차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C희망의 집에 사는 전직 이발사 朴모(46)씨는 자동차 사고를 낸 뒤 합의가 안돼 6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해 보니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었다. 그동안 내지 못한 카드대금 때문에 카드회사가 주민등록 직권말소를 요청한 것이다.

통장.이장 등이 한 해에 두 차례 일제조사를 나가 주소지에 살지 않는 사람들의 주민등록을 모조리 말소하기도 한다.

보현의 집에 사는 조모(46)씨는 여기저기 월세방을 옮겨다니면서 전입 신고를 제때 하지 않았다가 주민등록이 세 차례나 말소됐다.

그는 "주민등록을 되살리는 데 든 비용만 수십만원"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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