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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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선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의 한계부터 지적하고 싶다.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1890~1981.초상)가 근.현대 지성사에서 갖는 독자적인 비중은 분명 인정할 만하고, 제자가 공들여 쓴 이 전기는 그래서 더욱 가치를 더하지만 서술방식은 약간 문제가 있다.

우선 '다석〓참되고 거룩한 인격을 가진 진인(眞人)' 식의 서술부터가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

즉 지은이가 다석에 대해 숭모(崇慕)의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뜸 이런 식의 묘사를 동어반복으로 거듭하는 것은 거부감부터 안겨줄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다석의 단골용어도 눈에 걸린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생명인 제나(自我)' '영생의 얼나(靈我)' 식 용어 말이다.

다시 말해 다석과 그의 종교사상을 현대학문이 떠먹기 좋게 보다 분석적으로 묘사해야 하고, 그런 서술방식만이 지난 반세기 넘게 잊혀져온 다석 사상을 한국 사회의 주류 속에 제대로 진입시키는 지름길일 수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만들어진 것만은 분명한 다석의 전기는 각별하게 읽힌다.

그것은 지난 근.현대 1백년간 한국의 제도권 사회 내지 아카데미즘이 '박래품(舶來品)사유' 에 골몰하느라 정작 자기 내부에서 사유의 물길을 끌어올리는 작업에는 소홀히 했다는 것,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균형잡기가 필요하며 다석은 이런 작업의 좋은 '비빌 언덕' 일 수 있다는 확인 때문이다.

다석은 함석헌의 오산학교 시절 스승이다. 하루에 한끼 먹는 습관부터 다석(매일 저녁 한끼만 먹어 호가 多夕이다)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민중을 뜻하는 '씨알' 이라는 용어도 실은 다석의 것이었다.

이번 전기를 보면 다석이 교유했던 인물들이 당대의 핵심 인물들이었음이 드러난다. 김교신을 비롯해 남강 이승훈, 위당 정인보, 춘원 이광수, 단재 신채호 등이 그들이다.

서울 남대문에서 출생해 청년시기 연동교회의 신자로 출발했던 다석의 중요한 점은 그가 기독교 신앙을 넘어 유교.도교.불교.한국 토착신앙 등에 두루 밝았다는 점이다.

사회활동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1928년 이후 40년 가깝게 행한 서울 YMCA 강좌가 바로 다석이 우리사회에 남긴 최대의 지적 유산이다.

문제는 지금도 다석 사상은 '종교 절충주의' 내지 '종교 다원주의' 정도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상.하권 전기의 책장을 덮고 나서도 이점은 마찬가지다. 지난 10여년새 나온 서강대 정양모(종교학)교수 등에 의한 수십편의 석.박사 학위 논문들도 아직은 다석 종교 사상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 흔치 않은 다(多)종교 국가인 한국의 앞날에 던지는 암시를 간취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 다석의 전기는 이런 앞날의 과제를 위한 첫발 떼기로 만족해야 옳은지 모른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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