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향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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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시절 근대화는 결국 도시화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삿짐 싸서 식솔 이끌고, 또는 혈혈단신 '올라 온' 도시는 과연 행복과 풍요를 얼마나 더해 주었을까. 도시화란 적어도 현재까지는 거스르기 힘든 추세다.

문제는 그 추세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박제화(剝製化)한 도시를 살아 숨쉬는 공동체로 가꿔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며, 저자는 "21세기는 국부론(國富論)이 아니라 향부론(鄕富論)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 는 답을 제시한다.

『향부론』이란 제목은 물론 근대 경제학의 시발점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의식하고 있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래 20세기까지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상목표로 삼았던 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우선하는 지방(도시)의 시대" 라며 이제는 지역문화(鄕富)가 바로 지속가능한 국가경쟁력(國富)의 기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향부를 공장 하나 더 유치하는 데서 나오는 것쯤으로 아는 천박한 인식을 꼬집는다.

10여년간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 이란 주제를 천착해온 저자 강형기(48.충북대 도시행정학)교수는 지역문화 육성을 정치.경제.환경 등 제반 정책을 포괄하는 최우선의 중심축으로 올려놓아

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런 주장이 '선거 표얻기' 용 단발성 이벤트에 익숙한 정책당국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2년간 '일본에 살면서 '일본 전역을 돌며 지방자치와 지역문화의 특징을 살펴본 체험이 이 책의 배경으로 녹아 있다.

◇ 토건(土建)적 개발에서 문화적 개발로〓기존의 지역개발은 예술에 비유하면 무대장치를 만드는 토건사업에만 치중했다.

지역개발하면 으레 공단(工團)을 조성하고 아파트단지를 개발하거나 기껏해야 문화회관을 건설하는 것만을 의미했다.

문화회관만 하더라도 멋진 시설을 만들어 화려한 개관식을 마치면 그날로부터 그 시설은 시민들과 멀어진다.

"퇴직이 임박한 직원이나 문화적 소양과 열의와는 거리가 먼 신참 승진자, 좌천된 사람들이 관행적으로 거쳐가는 자리인 문화회관 관장에게 지역의 고유한 테마를 엮어내는 기획사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

일본 후지사와시(市)의 유명한 '시민 오페라단' 은 출연자 대부분이 주민들이다. 지역의 회사원.학생.주부 등으로 구성된 재능있는 아마추어 예술단은 '도시란 곧 시민이며, 시민이 문화를 만드는' 좋은 사례다.

"훌륭한 종합예술로서의 문화도시를 만들려면 좋은 무대장치도 있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와 배우 그리고 연출가의 역량이 종합적으로 합치되어야 한다."

◇ 문화전략으로서의 지역축제〓축제는 지역주민 모두가 주인으로 참여하는 페스티벌이 되어야 한다. 이천 도자기축제, 부산 국제영화제 등 일부 성과를 보이는 축제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삶과 지역의 역사.산업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이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다.

"민간 이벤트사에 위탁해 강박적으로 치러내는 일회성 행사는 '소모적 '비용낭비일 뿐이다."

일본의 삿포로 눈축제와 고베시(市)의 패션박람회,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 독일의 뮌헨 맥주 축제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등은 지역의 테마와 주민의 삶이 일치된 그야말로 한마당 잔치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원시종교적 축제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공유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도 행해지는 일부 우리의 전통적 축제는 그 틀만 흉내낼 뿐이다. "

◇ 금도(襟度)가 있는 시민문화〓주역(周易)에 '관국지광(觀國之光)' 이라는 말이 있다.

관광(觀光)이라는 말의 출처다.'나라(지방)의 빛을 보는 것' 이 관광이다. 그 빛(光)을 구성하는 것은 풍물이나 문물과 제도, 다시 말해 지역문화다.

그런데 그 문화의 빛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인간의 향기' 다.

강교수는 "미학적 감각이 생활양식 전반에 녹아있는 거리, 시민의 인심과 도덕성과 공공의식이 살아 있는 도시, 다시 말해 '금도가 있는 시민문화' 가 문화도시의 필수조건" 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올해를 '한국방문의 해' 이자 '지역문화의 해' 로 정했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젠 통하지도 않는, 삶과 동떨어진 축제와 이벤트 대신 저잣거리나 뒷골목 같은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그 지역의 고유한 '인간의 향기' 를 맡도록 하자는 이 책의 주장은 그 발상의 전환을 위해 경청할 만하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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