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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우호 다지는 일본·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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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신 일.중 우호 21세기 위원회' 제2차 모임이 도쿄에서 열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해 설치한 민간 대화 조직이다. 일본 측 멤버는 나를 포함한 8명이고, 위원장은 경제동우회 간사를 지낸 고바야시 요타로 후지제록스 회장이다. 중국 측 대표는 오랫동안 중국 공산당학교 상무 부교장을 지낸 중국 최고의 이론가 정비젠(鄭必堅)이었다. 양국 위원에는 학자, 경제인, 언론인, 인기 캐스터, 우주 비행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위원회는 원래 198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와 후야오방 당총서기가 설치했다. 매우 친밀했던 두 사람은 양국의 미래를 위한 포석을 놓는다는 취지에서 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나카소네가 85년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자 후야오방은 당내에서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자 나카소네는 다음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했다. 정비젠은 당시 후야오방의 비서였다.

위원회는 양국 간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쟁점과 대립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제언을 취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양국 간 문제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양국 정상의 합의에 따라 설치된 만큼 역할은 크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의 제1차 모임에선 "양국이 동아시아의 안전보장.통상.금융.에너지.환경.전염병.범죄 등 공통문제에 대해 긴급히 공동대응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했다"는 점을 서로가 인정했다. 보다 대국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이번 2차 모임에선 해양자원 개발과 양국 국민감정이 의제가 됐다. 중국은 동중국해의 양국 간 경계 지역에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이에 반발해 독자적인 자원 조사를 시작했다. 양국 모두 "공동개발이 최종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양국 정부가 체면을 지켜가면서 '우호.협력의 바다'로 이르는 것은 평탄하지 않다.

국민감정은 훨씬 위험한 주제다. 올 여름 중국에서 개최된 아시안컵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부 관중은 일본 국기를 태우거나 대사관 공용차를 습격하는 반일행동을 보여줬다. 과거 30년 이상의 양국 관계를 돌이켜 봐도 국민감정은 새로운 현상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대일 정책은 기본적으로 상의하달식이어서 국민여론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지나치게 국제협조를 중시한 나머지 약체외교라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일본 여론도 중국에 대해 비슷한 수준으로 감정적이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일.중 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정냉경열(政冷經熱)'이란 말이 흔히 쓰인다.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정치와 경제는 별개 분야였다. 그러나 최근 신규 계약 등을 보면 '차가운 정치'가 '뜨거운 경제'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 같다. '차가운 정치'의 근본 원인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대응방식에도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국 간에 정상회담을 비롯, "전체 관계를 무너뜨리지 말고 문제를 처리하자"는 어른스러운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의 성숙한 대응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선 문화.사회적으로 과거에 볼 수 없던 한국 붐이 불고 있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위원회를 통해 일.중 양국 위원들 간에 우호.신뢰 관계가 생겼다. 이번 모임에서 발표한 공동문서에는 양국 간 협조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언들이 포함됐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결국에는 양국 정상이 전략적 배려에 의해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양국 정상의 공식 방문이 3년간 끊긴 것은 이상할 수밖에 없다.

고쿠분 료세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정리=오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