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심 "여든 야든 지겹다 경제나 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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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설연휴 지역구를 찾은 의원들은 어느 명절 때보다 쓴 소리 가득한 민심(民心)를 접해야 했다.‘정쟁(政爭)중단’과 ‘민생우선과 경제 회생’요구는 지역과 여야를 가릴 것이 없었다.

여야는 “쓴소리가 민심의 풍향계(風向計)”라며 이를 바탕으로 정국구상을 짜고 있다.

◇ '민생 먼저' 〓지역구인 서울 강서을의 재래시장을 누빈 민주당 김성호(金成鎬)의원은 "야당하고 싸움을 하더라도 경제를 살려놓고 하라" 는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민생 책임은 여당에 있는 것" 이라는 주민들의 지적이 거듭되자 金의원은 "경제가 어려워 정말 죄송합니다" 는 첫 인사를 하며 다녀야 했다.

민주당 고진부(高珍富.서귀포-남제주)의원은 "감귤값 떨어진다는 근심소리만 들었다" 며 "차라리 여든 야든 가만히만 있어 달라고 하더라" 고 전했다.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폭발 직전" 이라며 한나라당 김부겸(金富謙.군포)의원은 그 심각성을 전했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서울 송파갑)의원은 "경제를 살리는 데는 야당도 앞장서라는 주문이 있었다" 고 말했다.

"현 여당도 무능하지만 효과적으로 정책을 견제해 나라를 잘 이끌어가야 할 야당도 무능하긴 마찬가지" 라는 얘기라고 했다.

같은 당 안택수(安澤秀.대구 북을)의원은 "여든 야든 지겨우니 잘 살도록만 해달라 하더라" 고 소개했다.

◇ "의원 이적 볼썽사나운 일"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 이적(移籍)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나주의 배기운(裵奇雲)의원은 "하나같이(이적을) 곱지 않게 보더라" 며 "민주당으로 당선한 의원을 왜 빌려주었느냐고 추궁해 설명하기 어려웠다" 고 말했다.

안기부 총선자금 수사와 '강한 여당론' 에 대한 충고의 목소리도 나왔다.

순천의 김경재(金景梓)의원은 "수사 타이밍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조사는 분명히 해도 정치보복 소지를 지닌 처벌은 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왔다" 고 했다.

강한 여당론에 대해서는 "야당과는 대화.타협이 대세라며 정권을 잡은 쪽에서 너그럽게 나가라고 하더라" (김경재), "여야 관계는 '부드럽게' 가 주조" (張正彦.북제주)라는 게 그 요체다.

그러나 이협(李協.익산)의원은 "구조조정에는 눈치보거나 여론 인기를 생각지 말라는 요청도 적잖았다" 고 말했다.

◇ "姜의원 출두 후 공세 펴라"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수원 팔달)의원은 "안기부 자금은 결국 세금을 빼 쓴 것이라며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고 말했다.

南의원은 "일부 주민은 '(姜三載의원이) 나가 떳떳하게 조사를 받은 다음에 여당을 공격하라' 는 주문도 했다" 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안영근(安泳根.인천 남을)의원도 "지지자나 당원들 중에도 姜의원이 당당하게 조사받는 게 낫다는 주장이 많았다" 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정대(正大)스님의 이회창 총재 비판에는 "종교지도자는 현실정치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 는 반응이 주류인 가운데 한나라당 일각에선 '자성론(自省論)' 도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한 의원은 "이미지가 좀 차 보이는 게 사실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며 "화합정치 이미지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또 "한나라당도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 하더라" (金文洙.부천 소사)며 '건설적 대안 제시' 의 요구도 전달했다.

◇ "자민련 정체성 찾아라" 〓자민련 이재선(李在善.대전 서을)의원은 "민주당만 따라다니지 말고 자민련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라는 말이 많았다" 고 충청권 민심을 전했다.

이양희(李良熙.대전 동)의원도 "자민련이 딱하다고 하더라" 고 우려했다.

강창희(姜昌熙)전 부총재의 탈당에 대해서는 "소신 있는 행동이란 의견과 당의 혜택을 본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는 의견이 엇갈렸다" (金學元.부여)고 한다.

최훈.김정욱.서승욱.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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