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대북정책의 변화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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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상했던 대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크게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시 새 행정부의 국무장관 지명자 콜린 파월은 상원 인사청문회 증언을 통해 북한의 과다한 재래식 무력 보유와 미사일 개발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

그는 클린턴 정부 때 만들어진 북.미합의의 틀을 준수하겠지만 미국의 안보 우려에 대한 상호주의적 조치가 취해져야 함을 전제로 내세웠다.

그는 클린턴 정부가 권고한 대북 관계 개선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다" 고 함으로써 북.미관계 개선의 가능성은 뒤로 밀려났다.

파월 지명자가 특히 '북한의 독재자' 라는 말을 사용한 그 바닥에 깔린 대북인식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인식이 강경하다고 해서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의 기본틀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다만 이산가족 상봉이나 경의선 철도 건설 같은 이벤트성 겉치레 행사로 미국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량파괴무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심각하게 전달하지 않은 데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모호하고 우회적인 평화 전망보다는 남북간에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실증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조기 답방과 평화협정 체결 등이 그 구체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북한도 미국이 대포동 미사일을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꼽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사일 개발 중단 선언과 같은 조치를 먼저 취할 필요도 있다.

중국의 접근이나 푸틴의 방한 등 주변4강의 관심을 최대한 이용하는 전략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미.일을 잇는 외교안보축과 미국 시장경제권 안에 있는 우리로서는 4강 틈새외교의 잔재주로 상황을 타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골격이 굳어지기 전에 한.미간 대북인식의 공약수를 최대한으로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전외교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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