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삼국지 문화답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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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웅.호걸들의 성공과 좌절을 다룬 삼국지에 대해 말을 덧붙이는 건 췌언에 불과하다.

이 글이 쓰여진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전승되며 오랜 기간 폭넓게 읽히며 수많은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삼국지 문화답사기』 는 부산대학교 중문과 교수인 저자가 삼국지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영웅들의 궤적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이다.

때로는 중국의 민간에 유포된 설화적 상상력의 세계와 사실(史實)의 경계를 넘나들며 중국의 삼국시대를 수놓은 뭇 영웅.호걸들의 자취를 추적하고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전장(戰場) 가운데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적벽, 조조가 위(魏)를 세우면서 수도로 삼은 허창(許昌), 위기에 몰린 유비가 말을 타고 간신히 넘었다는 단계(檀溪) 등을 답사하면서 이들 영웅들에 관련된 구전 설화와 소설 내용, 역사서 『삼국지』에 실린 기록 등을 일일이 대조한다.

이른바 '삼국지 매니어' 들의 취향에 한껏 부응하는 내용들이다.

저자가 기울인 현장에 대한 꼼꼼한 메모, 다양한 구전(口傳)과 유적지 소개, 사실과 허구의 틈을 좇아가는 서술방식 등은 자칫 단조로 흐르기 쉬운 답사류 저작들의 단점을 보완한다.

현지에서 『삼국지』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소개한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예를 들어, 적벽전 현장을 찾아가 중국에 존재하는 적벽이 두 곳이라는 점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삼국지 현장으로서의 적벽과 송(宋)대의 문호 소동파(蘇東坡)가 남긴 절창 '적벽부(赤壁賦)' 의 적벽이 앞의 것은 '무(武)적벽' , 뒤의 것은 '문(文)적벽' 으로 불리며 실제상으로도 엄연히 다른 두 곳에 각각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중국인들이 '적벽' 하면 우선 떠올리는 것이 소동파의 적벽이라며 중국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삼국지의 열기를 언급한다.

현장 답사를 통해 여러 갈래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지만 아쉬움도 크다.

우선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와 진(晉)대에 진수(陳壽)가 지은 역사서 『삼국지』의 경계가 모호하다.

또 현장 답사에 앞서 문헌에 대한 고찰을 충분히 못한 것도 이 책이 지니는 커다란 단점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장면들을 추적하려면 진수의 삼국지 외에 이보다 40년 앞서 기록됐다는 어환의 『위략(魏略)』, 송(宋)대 배송지(裵松之)의 『삼국지주』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이들 책에는 소설 속 유비와 조조.제갈량 등 삼국지의 영웅들, 그리고 일부 사실과 다른 기록들이 많이 실려 있다.

이들을 도외시한 채 현장을 답사하다 보면 자칫 공허해지기 쉽다.

지금으로부터 1천8백여년 전의 역사현장이라고 남겨져 있는 것들은 그동안 지형적 변화 등을 감안하면 대부분 인멸됐거나 후세 호사가들이 조작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관중의 소설이 주자학적인 관점에서 등장 인물간의 구도를 일방적으로 설정했다는 비판들이 대두하고 있는 점을 상기하면 삼국지 현장답사에 앞서 이전 기록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요구가 아닐 것이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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