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시설관리 민영화 반대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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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재료공학과 洪현욱(28.박사과정 4년차)씨는 지난 15일 두달 동안 밤잠을 설치며 해오던 실험을 완전히 망쳤다.

금속강성연구실에서 실험도중 갑작스런 단수(斷水)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2억원대 실험장비가 몽땅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洪씨는 H사로부터 의뢰받은 '화력발전소에서 쓰이는 금속이 고온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라는 연구과제를 실험하던 중이었다.

洪씨는 "프로젝트 제출 기한인 3월까지 실험을 마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며 "이미 다 써버린 연구비 2천5백만원을 무슨 수로 돌려줘야 할지 막막하다" 고 말했다.

국내 최고의 과학두뇌 집단인 한국과학기술원이 구조조정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시설부문 민영화 방침에 반발한 노조 파업이 34일째 계속되면서 행정은 물론 4천여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교수진의 방학 중 연구기능이 뇌사상태에 빠져있다.

노조 파업으로 난방이 전면 중단돼 10여건의 동파(凍破)사고가 발생했고 전면 단수도 세번 있었다.

무엇보다 연구진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정전으로 인한 실험중단 및 장비고장 사태다.

난방이 안돼 연구실 등에서 전열기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과부하로 인한 정전이 20여차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지난 5일에는 전자전산학과 반도체 실험동에 있던 반도체 장비(1억원)의 터보펌프가 고장나 3백50만원의 피해를 봤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맹독 가스를 사용하는 전자전산학과의 반도체 실험동에서는 지난해 12월 말과 지난 3일 비상벨이 울리며 실험실에 있던 학생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기계과의 한 대학원생은 전압 이상으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타버려 석사논문을 다시 쓰고 있다.

과기원은 7백억원 상당의 프로젝트 8백여건 중 50% 이상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생물과학과 박상진(26.석사 1년차)씨는 "물이 안나와 플라스크를 씻을 수도 없는 공황상태를 겪고 있다" 며 "상식적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연구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일반 사무직원과 시설관리직원들로 구성된 노조(노조원 2백80여명)으로 구성된 노조는 학교측이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지침에 따라 전기.영선 등 시설분야(관련직원 53명)를 민영화, 41명을 해고하려 하자 이에 반발,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전면 파업을 벌여왔다.

합의에 의한 인원정리를 요구하고 있는 노조는 지난 5일 원장실을 점거한데 이어 16일부터는 전국과학기술노조 산하 36개 지부장과 함께 아예 행정동(대학본부)을 봉쇄했다.

사태가 악화하자 학교측은 16일 오전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노조의 강경 파업이 계속되면 공권력 투입을 요청키로 했다.

대전〓이석봉.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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