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기주도학습능력인가

중앙일보

입력

김송은 대치 에듀플렉스 원장

대치동에서 각종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연세대 의대에 합격한 한 학생을 알고 있다. 꿈에 그리던 의대에 합격해 온 집안이 기쁨에 들뜬 것도 잠시, 그 학생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합격한 예비 대학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대학생이 돼 신이 나겠다는 말에 그 학생들은 벌써부터 걱정되는 것이 많다고 대답했다.

가장 큰 고민은 대학교 수업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학원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리포트를 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학생이 자기가 아는 대학생 중에 대학원 선배에게 과외를 받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도 그러고 싶다고 말하자,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그런 방법이 있었느냐고 반색까지 했다. 이제까지 떠먹여 주는 공부, 떠먹여 주다 못해 꼭꼭 씹어 입속에 넣어 주는 공부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에게 어느 날부터 갑자기 홀로 감당해야 하는 대학교 공부는 마음을 짓누르는 큰 공포였던 것이다. 도대체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 얼마 전 외고에서 발표한 자기주도 학습 전형을 통해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어떤 역량을 의미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형 요강에 따르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의 소질과 개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거듭한 결과 ‘외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지니게 된 학생이다.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략적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인 공부를 꾸준히 실천한 학생이다. 하지만 온통 교과학습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 경험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숙고하며, 자신의 중장기적 진로와 앞으로의 인생 전반에 걸친 비전까지도 지니고 있는 학생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꿈을 이루기 위해 수완 좋은 선생님의 강의에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역량을 계발해온 학생이 자기주도 학습 역량을 지닌 학생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역량은 독서 능력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외고 입시에서는 독서 경험의 정도를 가늠하고자 한다. 또 궁극적으로 자기주도적 학생의 가장 큰 자산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글(학습계획서)과 말(면접)로써 학생의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입시 요강을 통해 추적해본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을 지닌 학생의 모습이다.

이처럼 본래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은 단지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라기보다는, 인생 전반에 걸쳐 주어진 과업을 전략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성취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자질이다.

자기주도 학습 능력은 가벼운 시류에 편승해 잠깐 번졌다 사라지는 유행도 아니요, 특정 고등학교를 지망하는 학생에게만 요구되는 입시용 기량도 아니다. 우리 아이가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제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점검해 볼 시기다. 미래의 교육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을 원하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