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호승 '수선화에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 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52) '수선화에게'

운동장 가 벚나무 끝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지지 않은 나뭇잎인가 했는데, 책을 보다 궁금해서 다시 보니 움직인다.

새다. 새가 나뭇잎처럼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외로움의 끝, 그 절정에서 잠깐 움직인 것이다.

산그늘이 강을 건넌다. 외롭다. 나도 집에 가야겠다.

김용택(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