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해지는 청소년 폭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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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15면

요즘 경기 지역 한 중학교의 잔인한 졸업식 뒤풀이로 말들이 많지만, 임상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듣는 폭력의 실상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충격적이다. 청소년기에는 도파민 분비가 증가하는 데다 현실과 이상, 어른과 아이, 몸과 마음 등 여러 종류의 간극(Gap)과 부러짐(Fracture)을 경험한다. 쉽게 화를 내고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한다. 어른들처럼 본능을 상징적으로, 우회적으로, 혹은 승화해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대개 어른들은 공격적인 성향의 청소년을 강압적으로 누르려 한다. 매를 대기도 한다. 그러면 자아가 확고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반항심을 갖기 쉽다. 차츰 애정 결핍이 심화되고 소속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다 폭력 조직에 빠져들기도 한다. 자신을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일진회 같은 집단에 매력을 느끼고 더 인정을 받기 위해 맹목적 충성심을 보이는 것이다. 16, 17세의 청소년들이 종종 잔인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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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소년기의 특징에 더해 최근에는 빈부 격차, 기회 불균등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경쟁만 강조하는 비인간적인 교육환경이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은 고소득층 가정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이나 다를 게 없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부모와 사회의 관심을 제때 받지 못하면 지능 저하, 충동조절 장애로 인한 폭력, 도둑질과 성폭력 등 비행에 빠진다. 고소득층 아이들도 지나칠 정도의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기력, 의욕 상실, 집중력 장애, 우울증 등의 증상을 보인다. 정신질환의 양극화 현상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대학에 입학한 뒤 학교 폭력, 성범죄, 약물 및 알코올 남용 등의 문제 행동을 보인다. 반면 후자는 우울증, 자기소외, 부모와의 갈등, 비도덕적인 가치관 등의 양상을 보인다. “운이 좋아 부모를 잘 만난 아이들의 돈을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빼앗아갈 수도 있지 않으냐”, “나도 당하며 살고 있는데, 그 아이라고 당하지 말라는 이유가 뭐냐”라고 태연히 말하는 아이들도 임상에서 여럿 봤다. 마치 조지 오웰의 SF 소설 타임머신에 나오는 세계를 연상케 하는 말들이다. 잘 살지만 생각 없는 지상인간들이 끔찍한 환경에서 사는 지하의 노동인간에게 잡아먹히는 이미지와 닮았다.

갈수록 그악해지는 청소년 폭력의 이면에는 ‘인생에 역전은 없다’는 자포자기 심정,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부모나 교사에 대한 분노, 세상에 믿고 의지할 어른이 없다는 실망감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있다.

양극화와 인간의 소외 현상이 극단으로 치닫는 선진국 역시 청소년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졸업파티를 열어 주는 등의 대책은 고식적이다. 그보다는 인간됨을 가르치는 교육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또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오늘도 어김없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어른들의 폭력성부터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애들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못 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막말·주먹질·성희롱·성매매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못된 어른들과 살다 보니, 순수했던 아이들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하고 심지어 칼을 휘두르는 강도범·강간범으로 변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어린 흉악범’이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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