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자금] '장물취득죄' 로 수위 높인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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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이 안기부 총선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정치인들에 대해 형법상 장물취득죄로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0일 "국가 예산을 절취한 사실을 알면서도 돈을 받았다면 장물취득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1천1백92억원의 예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당시 신한국당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자금의 성격과 출처를 알았다면 훔친 물건인 줄 알면서도 이를 취득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장물취득죄에 있어 장물의 인식은 확정적 인식을 요구하지 않으며, 장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는 정도의 미필적 인식으로도 충분하다" 는 대법원 판례까지 제시했다.

검찰이 이처럼 장물취득죄를 검토하는 것은 현역 야당 국회의원 등을 참고인이나 피조사자가 아닌 명백한 피의자로 소환 조사해야 '야당탄압' 이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를 물리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이 ▶상대적으로 많은 액수를 받은 출마자▶최근까지 안기부 지원자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사적(私的)인 용도로 사용한 정치인 등을 우선 소환대상자로 분류한 것에 대해 자의적 기준이라는 지적이 일부 나오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준 듯하다.

검찰의 장물취득죄 적용방침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일부 변호사들은 돈을 받은 정치인들에게 장물취득죄를 적용하려면 최소한 정치인들이 안기부가 신한국당에 불법지원한 총선자금 총액을 알았다는 것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총선 출마자들이 당시 선대본부장인 姜부총재를 '범인' 으로 의심하고 총선지원 자금이 범죄를 통해 조성됐을 것이란 상당한 의구심을 가졌는지가 범죄 구성요건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에 출마한 후보가 집권당 사무총장이 주는 돈을 의심하고 자금의 출처를 꼼꼼히 따졌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장물취득 혐의로 정치인들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姜부총재 소환을 위해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 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도 "姜부총재가 검찰에 당당하게 나와 속시원하게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면 이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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