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마지막 투르크 황태자의 양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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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2년 봄, 그날 이스탄불 공항은 조용한 설렘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오르한이 군사정권에 의해 추방된 지 꼭 70년 만에 첫 귀국하는 날이다. 잠시 여행을 가는 줄 알고 떠났던 열네살의 철부지 황태자가 이제 84세의 평범한 촌로가 돼 돌아온 것이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그는 몇번이고 조국의 하늘을 올려다보곤 천천히 트랩을 내려왔다. 그리곤 덥석 엎드려 땅에 입을 맞추곤 그대로 주저앉아 한없이 울기만 했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70년의 길고도 험한 유랑세월,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버텨오지 않았던가. 결혼도 하지 않았다.

비극의 씨는 자기 대에서 끝나야 한다는 소신에서였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나라 통치를 올바로 잘 했던들 대제국 오스만의 운명이 이렇게 처참히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그 고생을 안해도 됐을 것을. 그는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택시운전.창고지기, 세계를 유랑하며 고행의 나날을 보냈었다. 오직 소원은 하나, 죽기 전에 꼭 한번 조국 땅을 밟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50년 안에 귀국해선 안된다는 족쇄 때문에 속절없이 세월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해금(解禁), 하지만 행여나 하는 걱정 때문에 그의 간절한 귀국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여생이 다한 오늘에서 겨우 허락이 난 것이다.

대제국을 호령할 막강한 제왕이 한낱 초라한 노인이 돼 돌아왔으니 지켜보는 국민들 마음도 착잡했으리라.

이윽고 눈물을 거두고 그가 살던 옛집,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돌아왔다.

화려와 사치의 극을 이룬 궁전, 서서히 기울고 있는 노제국의 위용을 다시 세운다는 허영에서 지은 초호화궁전이다.

불행히 이것이 대제국의 멸망을 재촉하게 됐으니.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여길 보노라면 이 제국은 망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을 실감하게 된다.

옛 영화도, 근위병의 정중한 영접도 없이, 대신 정문에서 입장권을 손수 사든 황태자, 그가 뛰놀던 정원, 놀이방엔 지금도 굴렁쇠며 자전거가 그대로 놓여 있다.

금빛 찬란한 자기 침대도 어루만지면서 회상에 잠긴 듯 간간이 눈을 감곤 했다. 옛집을 둘러본 그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놓인 다리를 걸어서 건너보고 싶다고 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동서양을 잇는 다리를 건너며 대제국의 영화를 다시금 되새겨 보고 싶어서였을까. 차량 전용의 그 다리를 노구를 이끌고 천천히 건너기 시작한다.

지중해.흑해를 좌우로 바라보며, 그리곤 앞 뒤 동서양을 넘나보며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않았다.

노제국의 최후처럼 자욱한 안개 속에 태양은 이미 빛을 잃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보이지도 않았다.

그 긴 다리를 비틀거리며 다 건넜다. 자, 이젠 떠나야 한다. 다시 유배지로 돌아가야 하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겁고 아쉽다.

이 광경을 지켜본 터키 국민들도 형언할 수 없는 착잡함으로 가슴이 메듯 했다. 정도 많은 터키인이다. 관용과 포용의 제국적 기질이 지금도 맥맥히 흐르고 있다.

더 이상 참아볼 수가 없었겠지, 국민들은 노쇠한 마지막 황태자의 귀로를 막아섰다.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사시죠. " 진심에서 우러난 간청이다.

하지만 그는 잠시 주저함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살고 싶지요. 꿈에도 못잊은 고국인데,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터키에 세금 한푼 낸 적이 없는 걸요. "

이 대목이다. 내가 남의 나라 황태자 이야기를 길게 쓰는 사연도 여기에 있다. 그는 겸손했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못다한 자신을 준엄히 꾸짖고 있는 것이다. 그는 끝내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얼마 후 17평 아파트에서 쓸쓸히 파란 많은 삶을 마감한다.

세금 한푼 낸 적 없는 사람이 어찌 이 땅에 살 자격이 있단 말이오. 그는 의연했다. 과연 대제국의 황태자다운 기개가 살아 있다. 탈세만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남들이 피땀 흘려 낸 혈세마저 마치 눈먼 양인 양 이리떼들이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고 있다.

정녕 이 땅에 살 자격이 있는 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하도 딱하고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李時炯(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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