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유하 '無의 페달을 밟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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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두개의 은륜이 굴러간다

엔진도 기름도 없이 오직

두 다리 힘만으로

은륜의 중심은 텅 비어 있다

그 텅 빔이 바퀴 살과 페달을 존재하게 하고

비로소 쓸모 있게 한다

텅 빔의 에너지가 자전거를 나아가게 한다

나는 언제나 은륜의 텅 빈 중심을 닮고 싶었다

은빛 바퀴 살들이 텅 빈 중심에 모여

자전거를 굴리듯

내 상상력도 그 텅 빈 중심에 바쳐지길

그리하여 세속의 온갖 속도 바깥에서찬란한 시의 월륜(月輪)을 굴리기를, 꿈꾸어 왔다.

- 유하 '無의 페달을 밟으며'

유하, '시가 나를 건달로 만들었다' 는 아름다운 말을 해서 나를 기분 좋게 한 이 잘 생긴 사람은, 영화도 만드는 사람이다.

농경사회의 서정을 이끌고 도시로 간 이 시인은 거대한 자본의 숲인 도시를 자전거 살로 부수며 뚫고 나와 달린다.

보아라!시의 몸은 때로 눈 못뜨게 이리 눈이 부신 것이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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