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자 이 문제] 넉달째 '길 싸움'… 길이 안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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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시가 도로개설 예정 부지에 중장비를 가져다놓고 도로공사 강행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용인 주민 위한 도로 용인시가 책임져라."(구미동 주민)

"구미동 길 막으려면 강남 가는 길도 막아라."(죽전동 주민)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 일부 주민과 용인시 죽전동 일부 주민의 '7m 도로 분쟁'이 4개월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입주를 시작한 죽전지구를 비롯, 용인.광주지역 주민들은 출.퇴근 때마다 교통 전쟁에 시달리고 있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지만 구미동 주민들은 7m 도로 개통 뒤 겪게 될 교통난에 대비, 대체 및 우회도로 개설 계획을 먼저 제시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죽전동 주민들은 우선 개통한 뒤 함께 해결책을 찾자고 주장한다.

◆교통체증 현장=출근시간인 지난 15일 오전 8시10분 43번 국도(수원~광주)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풍덕천 네거리. 수지.상현.성복지구와 수원 등지에서 분당신도시를 거쳐 서울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1.5~2㎞가량 꼬리를 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같은 시간대 최근 입주가 본격화된 죽전지구와 구성.신갈 등지에서 분당 방면으로 진입하는 23번 국지도 가운데 동아쏠레시티아파트~죽전고가차도~죽전 로데오거리 앞 구간은 더욱 심각한 정체 현상을 빚었다.

잠시 후 대지초교와 광주 쪽에서 신호를 받고 진입한 차량까지 가세하면서 23번 국지도.43번 국도와 분당을 잇는 성남대로까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운전자 최모(52.회사원)씨는 "그렇지 않아도 교통 정체가 심각한 곳인데 죽전지구 입주가 시작된 지난 6월 이후 더욱 극심해졌다"며 "문제의 7m 도로만 뚫려도 교통량이 크게 분산될 것"이라며 빨리 도로를 개통해줄 것을 호소했다.

◆대립 현장=문제의 7m 도로를 경계로 구미.죽전동쪽 도로(왕복 6~7차로.길이 280m)에는 100여개의 크고 작은 현수막들이 나붙어 마치 대규모 파업현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특히 구미동쪽 도로는 컨테이너에 시멘트를 부어 만든 방어벽에 철조망이 겹겹 둘러쳐 있고, 굴착기.덤프트럭 등이 세워져 있다.

주민 이모(73.LG아파트)씨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사를 벌일지 몰라 대기조를 편성해 불침번까지 서고 있다"며 "유사시엔 주민들이 모두 현장에 집결, 공사를 저지하도록 비상 체제를 갖췄다"고 말했다.

죽전동 방향 도로 역시 용인시의회(의장 이우현.48) 의원과 주민들이 삭발투쟁과 농성을 벌이던 컨테이너 등 각종 시위용품들이 널려 있고 조기 개통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도로=문제의 도로는 1999년 12월 죽전지구 개발계획에 반영됐다. 이에 따라 토공은 수도권 남부 교통개선 대책회의 때마다 성남시에 도로 연결을 요구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남시는 동백~죽전~분당 도로 연결 불가 방침은 2000년 12월 경기도 도시교통정책심의위에서 이미 확정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 남부 광역교통망 완료(2007년) 이전에 도로가 접속되면 분당 내부도로의 교통난이 가중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성남시의 입장이다.

구미동 주민들도 "신도시 조성 당시 주민들이 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에 1조5000억원의 개발부담금을 냈는데 죽전 주민들이 무임 승차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협의=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지난 8일 성남시청에서 '불법도로 접속저지 분당대책위원회' 소속 5명과 간담회를 열고 "도로를 먼저 연결한 뒤 우회 지하차도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구미동 주민들은 "선 우회도로 건설, 후 도로 연결"을 요구하며 우선 개통 요구에 반대했다.

지난 6일에는 경기도와 토지공사, 용인.성남시 등이 400억~500억원을 분담, 성남시가 요구한 지하차도 건설을 추진하는 조건으로 합의키로 했으나 이대엽 성남시장이 불참하고 "주민들과 최종 협의가 필요하다"며 도로 연결 공사를 미뤄줄 것을 요구해 유보됐다.

◆마찰 및 고소 고발=지난 6월 10일 한국토지공사가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도로를 연결하려다 구미동 주민 300여명과 2시간여 동안 몸싸움을 벌여 양측 10여명이 다쳤다.

지난달 11일 죽전동 주민 1000여명은 현장에서 '도로 연결 촉구대회'를 하며 농성을 벌인 뒤 구미동쪽으로 진입하려다 일부 주민의 설득으로 무산됐다. 지난달 1일에는 용인시의회 이우현 의장 등이 삭발과 함께 일주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성남시는 지난 6월 이미 7m도로 연결 공사를 강행한 토지공사와 시공사인 H개발을 불법 형질변경 혐의 등으로 분당경찰서에 고발했다. 또 지난 9월 토공 등을 상대로 '구미~죽전 도로 연결 공사 가처분신청'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냈다.

용인.분당=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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