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미셸 위 작품 구경하실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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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미셸 위가 그린 그림들. 미셸 위는 동양화풍과 팝 아트가 결합된 수채화와 스프레이 페인팅, 스텐실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1000만 달러의 소녀’ 미셸 위(21)는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재원입니다. 골프야 그렇다 치고, 공부도 잘하고 미술에도 재주가 뛰어납니다. 이쯤 되면 미셸 위야말로 ‘엄친딸’이 아닐까요. 이번 주 golf&은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 3학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있는 미셸 위를 만나 골프가 아닌 그의 취미생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팔로 알토=성호준 기자

LPGA투어에서 2년째를 맞는 미셸 위(21)는 요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그림을 자신의 블로그에 가끔씩 올린다. 블로그의 이름이 ‘블랙 플라밍고’다. LPGA투어 개막을 앞두고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교정에서 미셸 위와 인터뷰했다.

“어떤 그림을 주로 그리느냐”고 묻자 미셸 위는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생각 나는 대로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린다. 어떤 때는 복잡한 추상화 같은 것도 그린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골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제일 친한 친구가 책이랑 그림 도구를 사주면서 저보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어요. 그 친구는 전공이 신경과학이었는데, 너무 한 가지만 하면 행복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많아지니 다른 것도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가 그림을 그린 지는 1년쯤 됐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그가 슬럼프에 깊숙이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미셸위가 리폼한 신발과 액세서리.

미셸 위는 최근 2~3년간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프로로 전향하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1000만 달러의 소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지만 성적이 좋지 않자 이 수식어는 그대로 큰 짐이 됐다. 소녀가 감당하기는 어려운 1000만 달러의 스트레스였다.

“처음엔 모든 게 쉽게 왔지요. 꿈의 세상이었어요. 그러다 모든 것이 무너졌어요. 손목의 뼈가 3개 부러진 뒤에도 경기에 출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대회엔 나가지 않았어야 했어요. 그렇지만 대회에 계속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잘못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죠.”

생각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가 최근 미국 골프잡지에 말한 인터뷰 내용이다.

“밤에 악몽을 꾸기도 한다. 연쇄 살인범이 나를 쫓는 꿈 같은 것이다. 살인범은 매일 다른 사람이다. 골프에 대한 꿈도 꾼다. 티타임에 늦었는데 누군가 나를 막아선다. 이런 꿈도 있다. 칩샷을 했는데 그린이 유리로 만들어져 공을 세울 수가 없는 거다. 공을 치면 그린을 넘어가고, 치면 또 넘어가고…. 그래서 부드럽게 치면 다시 공이 되돌아 오는 꿈.”

그렇지만 그림을 그린 뒤엔 그런 스트레스가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내 그림을 보면 행복해지고, 마음이 든든해지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림으로는 풀어낼 수 있거든요. 스트레스가 이걸로 다 빠져나가니까 무척 좋아요.”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린 뒤에 골프 성적도 나아지고 있다. 미셸 위는 지난해 중순부터 슬럼프를 극복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말엔 LPGA투어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과 유럽의 여자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골퍼 중엔 화가가 더러 있다. PGA 투어에서 뛰는 루크 도널드(영국)가 대표적인 경우다. 도널드는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의 작품은 비싼 가격에 팔린다. 도널드는 “예술을 하면 창의력이 생기기 때문에 골프 실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미셸 위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다. 아버지 위병욱씨는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블로그의 부제는 ‘인생에 대한 별 생각 없는 블로그…그리고 그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그가 말한 ‘인생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동양화풍의 수채화와 팝 아트 계열의 스프레이 페인팅, 스텐실, 직접 재봉틀을 돌려 직접 만든 옷, 리폼한 옷과 장신구, 요리 등이다. 블로그 제목처럼 이것 저것 두서없이 올리고 있는데 골프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미셀 위의 다양한 그림들. 맨 왼쪽 마음을 가진 로봇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나는 미술과 미술 수업을 싫어했지만 갑자기 예술가인 척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과 스프레이 페인팅은 물론 소품 직접 만들기(DIY)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무슨 장르에 속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단지 검정 플라밍고일 뿐이다’고 블로그에 썼다.

미셸 위의 그림은 습작 수준이 아니다. 국내의 한 미술평론가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팝 아트에 만화적 느낌이 포함돼 있는데 감각이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 화가의 작품이 아니라도 네티즌들은 찬사를 보낸다. 골프 천재가 이런 능력까지 가졌다니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댓글도 달렸다.

미셀 위는 추상화 느낌이 나는 스프레이 페인팅도 좋아한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그림은 마음을 가진 로봇 수채화다. 그림 상단엔 화려한 꽃들 뒤로 愛, 道, 決心, 和 등의 한자가 적혀 있다. 하단 로봇의 가슴에는 하트가 그려져 있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깨달았다”는 미셸 위의 마음을 이 그림에서 엿볼 수 있었다. 미셸 위는 ‘50년 후 우리 모습’이라는 또 다른 그림에서는 ‘우리는 방독면을 쓴 채 평화의 마크를 보면서 50년 전에 더 현명했어야 했다고 느낄 것’이라고 썼다.

화가보다 디자이너로 더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옷과 액세서리의 리폼은 실력이 수준급이다. 그는 “사촌동생에게 재봉틀 사용법을 배우자마자 재료를 사와 드레스를 만들었는데 내가 만든 옷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싸구려 옷과 신발, 핸드백 등을 사서 액세서리를 달아 고급스럽게 리폼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방문자들도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고 싶은데 팔 수 없느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셸 위는 옷감을 사서 티셔츠를 만들고, 버튼다운 셔츠로 치마를 만들기도 했다. 미셸 위는 길거리에서 산 표범 가면을 쓰고 찍은 사진도 블로그에 올렸다. “아무도 이 표범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미셸 위는 “우승하고 싶고,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지만 다른 꿈도 많다. 옷도 만들고 음식점도 차리고, 골프 코스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골프가 제일 중요한 모양이다.

“골프 이외에 다른 건 재미로 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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