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금융, 이정도는 돼야] 4.부실은 시장이 정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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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다운타운에 있는 아메리카 오피스 플라자. 25층짜리 쌍둥이 빌딩과 별 넷짜리 호텔이 함께 들어서 있는 대형 복합건물이다.

이곳에 텍사스주의 별명에서 이름을 딴 '론스타(외로운 별)' 펀드의 본사가 있다.

아메리카 오피스 플라자의 소유주였던 론스타는 1998년 건물을 매각한 채 두 층만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도 대형 펀드의 본사치고는 수수하다.

"회장님요? 본사엔 안 계시는데요. "

1백80억달러 이상의 부동산 관련 자산을 굴리는 론스타 펀드의 존 그레이킨 회장은 부재 중 이었다. 그레이킨 회장은 본사가 아닌 영국 런던의 사무소에서 상주하고 있었다.

론스타측은 "글로벌 경영을 위해서" 라고 설명했다. 표준시(標準時)가 적용되는 런던에 있으면 뉴욕.토론토.파리.서울.도쿄(東京) 등 각국의 론스타 현지 사무소와 영업시간 중에 연락하기가 가장 편리하다는 것이다.

론스타 펀드는 미국이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의 부실로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오湯?기회를 잡았다.

이들 조합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기업회생작업과 채무 구조조정 등의 자산관리를 통해 전문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론스타는 92년 이후 미국은 물론 한국.일본 등 아시아와 유럽에서 6천2백50여건(1백80억달러)의 부동산 관련 자산을 취득해 관리하고 있다.

"민간자본이 부실자산을 시장가격으로 사서 정리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처리과정을 보면 실제로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대부분 예금 대지급을 위해서였습니다. "

론스타 서울사무소의 스티븐 리 대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부실자산을 장부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손실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부실채권 정리를 어렵게 한다" 고 지적했다. 장부가를 밑도는 가격이 실제 시장가격인데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금융기관이 시장가격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부실채권을 주로 공개 입찰방식으로 매각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금융기관과의 개별 협상을 통해 부실채권을 사고 판다" 고 말했다.

한국 금융기관들이 부실자산의 헐값 매각이라는 여론의 지적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것이다.

"서울 명동의 나대지 1백평의 가격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론스타)

"공시지가가 가장 높은 곳이니 꽤 비싸겠지요. " (기자)

스티븐 리 대표는 "론스타의 계산법으로는 서울 명동의 나대지 가격은 0원" 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에서 임대료 등 실제로 얼마나 수익이 나오는지가 값을 따지는 척도(수익환원법)라는 것이다.

그 가격(0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나대지를 팔 수도 있느냐는 공격적인 질문에 그는 "물론 인근 부동산 가격과 비교하거나(비교법) 부동산 개발 비용 등을 감안(원가법)하는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 이라며 웃어넘겼다.

펀드의 목표수익률을 어느 정도로 잡느냐고 묻자 스티븐 리 대표는 "12~13% 수준" 이라고 대답했다. 위험이 큰 부실채권 전문 펀드치곤 목표수익률이 의외로 낮았다.

그는 "낮은 이자율로 해외에서 차입하는 등 선진 금융기법을 동원해 사실상 20%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고 귀띔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도라노몬 5번지 모리빌딩 5층. 1백30여명의 론스타 재팬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일하는 직원수도 본사보다 더 많다.

"론스타의 모든 사무소에는 자산관리회사(AMC)인 허드슨 어드바이저스 조직이 함께 붙어있습니다. 부실자산을 살 때부터 팔 때까지 실무 책임자인 자산관리사가 부동산 전문가와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를 지휘하며 전권을 행사합니다."

론스타 재팬의 랜디 워크 회장은 "일본 금융기관으로부터 전체 부실채권(NPL)의 30%에 이르는 4조5천억엔의 부실자산을 사들였다" 며 "론스타 재팬이 일본 부실채권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고 말했다.

론스타는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자신들의 업무를 사람 몸에 침입한 병균과 싸워 이겨내 처리하는 백혈구에 비유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생기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자신들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부실채권 시장에서 론스타.서버러스와 같이 펀드 형태의 투자기관은 단기적인 차익만을 노린다는 지적도 있다. 펀드의 존속기간이 2~5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미국 코넷티컷주에 있는 투자기관인 GE캐피털 본사의 한 임원은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므로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 성격의 투자 펀드와는 다르다" 면서 "이미 한국에서 장부가 2조원대의 부실채권(시가 6천억원)을 매입했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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