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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독일 '밀월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러시아와 독일이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밀월관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6일부터 1박2일에 걸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러시아 방문이었다.

러시아 정교의 성탄절이자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 부인의 생일을 맞아 개인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슈뢰더 부부에 대한 환대는 극진했다.

푸틴 대통령 부인이 공항에서 이들을 영접했고 볼쇼이 극장에서 '지젤' 을 관람할 땐 전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독일어가 유창한 푸틴 부부는 통역사 없이 슈뢰더 부부와 밀담을 나눴다.

모스크바 외각에 위치한 유서깊은 '세르기예프 파사드' 사원 성탄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알렉시 2세 총대주교는 유창한 독일어로 성탄 축하인사를 했다.

이날 밤 슈뢰더 부부는 크렘린궁 안에서 잠을 잤다.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이 독일의 통일을 승인한 후 양국관계는 호전됐으나 관계의 성격은 엄밀히 따지면 '잘 사는' 독일이 통일을 지원해준 대가로 '못 사는' 러시아를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지난해 30년만에 최고인 7%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점차 국내안정을 되찾고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면서 양국간에 전략적 동반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냉전체제 붕괴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유럽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러시아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계획에 대해 양국이 손잡고 반대한 것은 이런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로선 또 외채 1천9백억달러 가운데 5백억달러를 차지하는 독일과의 외채협상 등 경제협력도 시급한 상태다.

빌트 암 존타크지는 7일 "푸틴과 슈뢰더가 실무자급으로 구성된 '상트 페테르부르크 회담' 을 열기로 했다" 고 보도했다. 개인적 친분을 토대로 각 분야의 실제적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이같은 독일.러시아의 밀월관계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수적인 대외정책과 맞물려 21세기 초반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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