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보건소 방문간호사 23명 건강 지키고 고민 들어주는 ‘백의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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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곳곳을 누비며 소외된 노인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말동무도 해주는 천안시보건소 방문간호사들. 노인들은 이들을 ‘백의 천사’라고 부른다. [조영회 기자]

천안시 보건소 방문간호사 마장현(여·40)씨는 이제 10개월 된 초보다. 그는 엄모(67) 할머니에게 처음 전화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흐릿한 음성이 아직도 또렷하다고 했다. 할머니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집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엄 할머니는 1년 전 자동차 사고 이후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었다. 그가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발 대신 무릎으로 걸었다. 혼자 집안 살림을 하기엔 힘들어 보였다. 엄 할머니의 깡마른 몸이 그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마씨는 인근 교회가 운영하는 무료 반찬 배달서비스를 찾았다. 엄 할머니를 대신해 서비스를 신청했다. “내가 먹으면 더 힘든 다른 사람들이 못 먹는 게 아닌가”라며 걱정하는 할머니를 겨우 달랬다. 첫 반찬은 마씨가 직접 배달했다. 뜨거우니까 꼭 식으면 드시라고 신신당부까지 하고서야 안심하고 돌아섰다. 보건소의 가사도우미 서비스도 할머니와 연결시켰다. 가사도우미가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해서 살림을 돕게 했다. 그는 “할머니가 간호사 선생님 오기만 기다리고 계신다”는 가사도우미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찡해진다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마씨가 방문하는 날이면 할머니는 현관문을 미리 열어둔다. 마씨가 바로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움직이기 힘드시지도 않냐”는 마씨의 타박에 할머니는 “늙은이 집에 말동무하러 와줘 고맙지”라며 웃는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마씨에게 힘이 된다. 자신 덕에 삶이 나아진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찡그렸던 얼굴도 펴진다. 오늘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천안시 성정2동 방문간호사 이명숙(여·39)씨. 처음 이씨를 맞이했던 건 사람들의 의심에 찬 눈초리였다. 첫 방문대상자들은 대부분 이씨를 경계했다.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내치기가 일쑤였다. 이씨는 어떤 말로 자신을 설명해야 할까 주눅이 들었다. 작은 말 한 마디에도 상처를 받았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도통 자신이 없었다.

방문간호사들이 직접 쓴 사례집(왼쪽)과 간호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온 노인의 편지.

그러다 찾게 된 성정2동의 어느 낡은 아파트. 이씨는 그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간질과 지체장애가 있었다. 할머니는 허리를 펴기 힘들다고 했다. 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야채와 과일을 떼다 팔고 있었다. 그 돈으로 아파트 월세를 내고 약값도 했다.

처음 노부부의 방문을 열었던 순간, 이씨는 문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퀴퀴한 악취에 습기가 차올라 벽지도 얼룩덜룩한 방. 멀쩡한 사람도 곧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았다. 이씨는 당장 도배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도배봉사를 하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쉽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서야 한 자원봉사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도배와 장판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노부부가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벅찼다. 소식을 들은 노부부도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를 보며 “자식보다 낫다”며 고마워했다.

이씨는 간질 환자 투약비 지원 사업에도 할아버지를 소개했다. 병원과 연결시켜 치매검사도 받도록 했다. 허리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시청의 의료비지원을 받도록 도왔다. 수술 후 한동안 장사를 하지 못할 때는 한시적 생계비 지원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씨는 노부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방문간호사의 보람을, 나눔의 미덕을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씨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노부부의 환한 미소를 떠올린다.

마씨와 이씨를 비롯해 천안 곳곳을 누비는 ‘백의의 천사’들이 있다. 천안시보건소의 방문간호사들이다. 시는 2007년 4월 처음 방문간호사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23명의 방문간호사가 곳곳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모두 간호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가다. 그들은 사람들을 찾아가 함께 울고 웃는다. 때론 딸처럼, 때론 손녀처럼 노인들의 건강을 챙기고 고민을 나눈다.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맡아 한다. 보람과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천안보건소 방문간호사 23명은 자신들을 ‘불빛이 없는 구석까지 빛을 비추는 사람들’라고 했다. 천안시보건소 이문영 건강증진과장은 “각 간호사들이 맡은 사람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 지원이 부족해 간호사들이 고생이 많다”며 “ 묵묵히 일해주는 간호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글=고은이 인턴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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