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중-북관계와 6자회담의 방향

중앙일보

입력

1882년 미국의 동양학 전문가 그리피스(William E.Griffis)는 『은둔의 나라 한국(Corea-The Hermit Nation)』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의 제목에는 당시 일본의 개방에 비교해 “鎖國 조선”을 경시하는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한반도의 은둔자와 죽의 장막은 49.10.6 수교이래 이념적 동질성과 한국전쟁의 전우애를 바탕으로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혈맹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들 중 죽의 장막은 쇄국의 병폐를 자각하여, 장막을 걷고 개방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반면에 영원한 은둔자는 오늘도 개방을 거부한 채 핵무기 하나에 생존을 건 곡예사의 묘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개방이라는 간단한 외교적 수단이 이렇게도 두 나라의 명암을 극명하게 가르면서 현대사에 산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측에 한국전쟁 직후 1957년 까지 약 8조원(인민폐)을 원조했고, 지금까지도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하여 북한을 구제해주고 있다.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수혜 이외도 1971년 미사일 개발을 전수받았고, 1975년에는 중국의 ‘동풍-61 개발계획’에 참여하여 제반 미사일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 물론 중-북 관계는 한-중 수교직후 악화되기도 했고, 북한이 2006년 이래 두 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하자 중국은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분노는 몇 달이 안되어 중국 총리의 방북을 통해 대북지원으로 용해된다. 이것이 바로 순망치한의 중-북간 현주소이다.

중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로운 현상유지를 희망한다. 지정학적으로 북한의 존재는 중국측에 미.일 팽창의 방파제인 완충지대(Buffer Zone)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동북아 세력 균형상 중국은 영향력 행사의 종속변수로서 북한을 카드화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중국은 북한의 악동 같은 핵실험 강행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끈을 놓지 못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동북아 역학구도로 인해 실로 오묘한 운명의 동거가 한반도 북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중으로 6자회담 재개가 외교가의 화두가 되고 있다. 6자회담은 북한에게 참으로 노다지와 같은 기막힌 장터다. 북한은 몸값을 잔뜩 부풀린 후 거드름 피우며 북경장터에 등장해, 지키지도 않을 약속 하나에 엄청난 경제이득을 챙기고, 생트집 거리 하나 미끼로 남긴 채 퇴장한다. 경제적 이익에다 보너스로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 기간도 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6자회담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번에 또 북한이 6자회담 운운하는 것도“핵 포기는 안중에도 없이 국제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체결, 경제지원 획득만을 노린 술수”라는 것이 북한을 좀 아는 식자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국제사회에서는 6자회담 무용론이 나왔다. 진정성이 없는 북한과 회합을 한다는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북한의 진정성을 보장할 만한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지금은 6자회담 재개보다는 6자회담의 대체론이나 획기적인 보완책을 논의하는 것이 더 절실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우선 6차회담 대체안으로 일본 방위대학교 교수 쿠라타(倉田秀也) 등이 주장하는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방안은 이미 국제사회에 널리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는 대안이다. 문제는 중국측이 북한의 고립심화와 핵실험 강화 우려를 이유로 5자회담을 반대하고 있는 점인데, 이는 중국 외교통들의 전략적 사고가 유연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5자회담에서 북핵 대책을 협의한 후 그 결과를 가지고 중국이나 미국이 북한과 양자회담을 갖는 선순환 구조로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5자회담은 유관 국 의견 조율이 용이한 데다, 그 틀 안에서 유관 국들이 양자 또는 3자 회담도 수시로 개최한다면 북핵문제 대처에 더 신속하고 다기능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6자회담의 보완책으로는 북한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한,미,일,러 4국이 먼저 중국으로부터 “북한의 위약”에 대한 가혹한 국제제재 동참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아니면 중국이 절대권력자 김정일로 부터 “6자회담 합의사항을 위반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약속을 받은 후 국제사회에“북한의 약속이행”보장을 천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안이나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북 다자회담 운용을 접고, 지금 이대로 대북제재 시스템을 운용하면서 북한의 핵 확산이나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괜히 이행도 안될 합의를 위해 국제적인 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 북한의 진정성 보장없이 또다시 어물쩡 북한을 믿어보다가는 오히려 북한이 원하는 대로 암묵적 핵 보유국 인정, 국제제재 해제, 미군철수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체결의 수순만 실행될 공산이 크다.

지난 2.2 데니스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상원에 제출한 ‘연례 안보위협 평가 보고서’에서“북한은 이미 핵무기 생산 능력을 갖추었으며,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길 추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서 “북한의 핵 보유가 외부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對 한국 억지력 확보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이 말은 북핵 폐기 실현의 至難성과 북한 대량살생무기의 對南 조준을 시사하고 있다. 그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얼빠진 한국인들과 대북 협상에 임하는 우리 정부가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