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그랜드 디자인] 2.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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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국이 대변신을 꿈꾸고 있다.

19세기 '동아시아의 병자(病者)' 였던 중국이 20세기의 과도기를 거쳐 21세기 중엽엔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이 발전한 사회주의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야심을 달성하기 위한 경제.외교.정치의 3대 목표를 이미 설정했다.

경제적으론 201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지난해의 두배로 올릴 계획이다.

외교적으론 미국 중심의 일극화체제를 타파해 다극화를 이루고 정치적으론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을 강화해 위상을 재정립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세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중국이 던지는 승부수가 있다. 바로 2008년 올림픽이다.

중국이 2010년의 1인당 GDP를 지난해 8백달러의 두배로 끌어 올리려면 앞으로도 제9차 5개년 계획(1996~2000년)기간에 이룩한 8.3% 정도의 고도성장을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올림픽 개최를 통한 특수(特需)창출과 경제개방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서울올림픽 때는 16만개, 시드니올림픽에선 15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며 만일 베이징(北京)이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 샤강(下崗, 정리 휴직)에 신음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탈출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1천6백억위안이 투자되는 공기 정화사업, 페인트가 동이 날 지경이라는 베이징의 빌딩 채색, 총연장 1천㎞의 숲띠 조성, 19개의 경기장 신축과 대대적인 도시정비 등 올림픽 유치를 통한 투자는 엄청난 경기부양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올림픽 유치가 베이징의 개방을 확대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충격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어를 말해 올림픽을 맞자(講英語 迎奧運)' 는 구호 아래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영어 배우기 열풍도 베이징을 국제도시로 변신시켜 글로벌 시대의 강국 중국 건설에 촉매가 될 것이란 노림수도 있다.

미국의 유일패권국적 지위를 철폐해 21세기 다극화 세계를 만들려는 중국의 외교목표에서 볼 때 올림픽 개최는 중요한 시험대라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27번의 올림픽이 아시아에선 단 두번만 개최됐었다. 이는 국제사회의 흐름이 서구에 의해 좌지우지돼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중국의 유구한 문명과 서구의 현대문명이 만나는 동서 융합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엔 물론 국제사회의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세계사를 움직여 가는 데 서구뿐 아니라 중국도 참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다. 중국은 또 올림픽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도 확립하려고 한다.

개혁개방 20주년을 맞는 1998년 중국에선 반체제 인사들이 최초의 야당인 '중국 민주당' 을 결성하려고 해 중국 공산당을 경악시켰다. 이들을 체포해 급한 불은 껐지만 충격과 파장은 컸다.

다양화한 사회, 부유해지는 경제, 열리는 국제환경 속에서 공산당 일당 지배의 정통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 중국 공산당이 내놓은 위기 타개책은 '애국주의' 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는 중국 인민들을 애국의 열풍으로 몰아가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008년 올림픽 유치는 세계의 중국으로 거듭나고 세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중국식 그랜드 디자인의 구체적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일부 국가 인사들은 93년 중국의 2000년 올림픽 유치 시도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인권문제를 이유로 베이징의 올림픽 유치에 반대하고 있다.

베이징이 두번째 도전에서 또다시 실패하면 충격은 상상 외로 클 것이다.

올림픽을 통해 이루려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중국 내의 반(反)서방 감정이 크게 증폭될 것이다.

특히 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진입하려는 중국 정부를 좌절시켜 중국과 국제사회를 소원하게 만들고 국제정세가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있다.

기대가 너무 큰 데 따른 후유증이다. 2008년 개최지는 오는 7월 13일 모스크바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 중국의 올림픽 개최는 단순한 스포츠행사가 아니라 21세기를 향해 중국이 내딛는 첫 발걸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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