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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월은 권력보다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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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샨사 지음, 이상해 옮김, 현대문학
상·하권 각 262·270쪽, 각 권 8500원

천안문
샨사 지음, 성귀수 옮김, 북폴리오, 223쪽, 8500원

1972년생 중국 여성 소설가 샨사의 문학 이력은 독특하다. 아홉살 때 시집을 냈을 정도로 문학적 가능성을 일찌감치 인정받은 샨사는 열여덟살에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건너간다. 그는 이주 7년 만인 97년 프랑스어로 첫 장편소설 『천안문』을 출간한다. 신작 『측천무후』는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측천무후』와 『천안문』이 나란히 이번에 번역·출간됐다. 또 2002년에 출간됐다 절판됐던 장편소설 『바둑두는 여자』(현대문학)도 재출간됐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굴로 직접 뛰어든 격인 샨사의 행보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듯하다. 프랑스어로 작업하는 예쁘장한 외모의 동양 여작가에게 프랑스 독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작품마다 화제가 됐고, 특히 『측천무후』는 판권을 두고 출판사 간 법정 분쟁까지 벌어졌다.

물론 그런 호응이 작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샨사가 이국의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선택한 소재가 중국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대목들인 까닭에 흡인력이 대단하다.
우선 측천무후. 역사서가 전하는 측천무후는 7세기 당 태종의 후궁으로 출발했지만 태종의 아들 고종의 눈에 들어 황후에 오른 뒤 치열한 권력 암투 끝에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가 된 걸출한 여인이다. 그는 나라 이름까지 당(唐)에서 주(周)로 바꿨고, 요승(妖僧) 회의 등과 추문을 남기기도 했다.

소설로 재구성된 측천무후는 잔혹하고 무자비한데다 도착적 성행위까지 즐긴 비정한 성공주의자만은 아니다. 소설 속에 생생히 재현된 궁녀들의 가학·피학적 동성애는 오매불망 한 남자(황제)의 성은만을 기다리는 1만명 궁녀의 처지를 참작하면 이해될 법하다. 육순·칠순에 젊은 남자를 탐했던 측천무후의 노욕도, 젊은 여체를 탐하는 지긋한 남성의 경우가 비일비재한 현실을 떠올리면 간단히 비난할 것만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되지만 태종과 측천무후의 관계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에서 출발해 권력 투쟁에 공동 대응하며 공고해진, 전략적이고 실리적인 것이었다. 사서가 전하는 대로 간계를 동원해 고종의 손발을 묶고 절대 권력을 휘두른 패덕(悖德)의 여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성적 욕망에 충실했고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철저한 실리 계산과 냉혹함으로 권력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측천무후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말년 측천무후는 정수리에 쪽을 지어 머리가죽을 힘껏 잡아당겨 이마·관자놀이의 주름을 없애고 뺨에 네겹의 분을 발라 젊어보이도록 단장한 것으로 묘사된다. 신(神)과 같은 권세를 휘둘렀지만 그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자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절대 권력을 둘러싼 궁정의 권모술수는 소재로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당나라 황궁을 들여다보는 흥미가 반감된다. 사건과 에피소드의 나열로 다소 밋밋한 느낌이다.

한편 89년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천안문 사건은 노벨상 수상작가 가오싱젠와 노벨상 후보로 단골 거론되는 시인 베이다오 등 중국 작가들이 익히 다뤄온, 말하자면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천안문』은 사태 당시 학생 운동의 선봉에 섰던 여학생 아야메와 군 장교 자오의 추격전이 기본 줄거리다. 하지만 소설은 충격적이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당국의 무자비한 탄압을 고발하지 않는다. 샨사는 소녀 시절 아야메가 경험한 남자 친구 민의 죽음을 통해 기성 가치관을 주입하는 가족·학교·사회 등 제도 일반을 문제 삼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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