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납치 길용호 선원이 38년 만에 북한서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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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동생 순희가 버스정류소에서 '오빠! 아프지 말고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꼭 돌아오라'고 한 간절한 부탁. 이 모든 것이 사랑하는 동생과의 마지막 생이별이 될 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1966년 1월 '중공(中共)으로 납치됐다'고 정부가 발표한 길용호의 선원 박태원(59.가명)씨. 그가 38년 만에 고향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발신지는 평안남도. 중국이 아니라 북한에 납치된 것이었다. 박씨는 인편으로 편지를 중국에 보냈고, 이 편지는 팩스로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박씨의 누나 순자(62)씨에게 최근 전달됐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도록 생사여부조차 전할 길 없이 헤어질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천년에 한 번 있다는 기회가 와서 생존 사실을 부모.친척에게 전하고자 한다."

박씨는 북한에서 가정을 이뤄 딸 셋을 낳았다. 공장에서 퇴직한 뒤 부인.막내딸과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증명사진도 팩스로 부쳤으나 제대로 알아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가족들은 중국에 끌려간 줄 알았던 박씨가 북한땅에 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다. 여동생 순희(54)씨는 "헤어질 때 '돈 많이 벌어 좋은 선물을 사가지고 오겠다'던 그 오빠가 틀림없다"며 울먹였다.

▶ 길용호에 탔다 북한에 끌려간 박태원씨가 38년 만에 보내온 육필 편지(上)와 피랍사건을 다룬 중앙일보의 1966년 1월 24일자 보도 내용. 편지 내용 중 일부는 박씨의 신변보호를 위해 편집과정에서 삭제했다.

박씨는 편지에서 "부산으로 가 66년 1월 17일 '길영호'라는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를 북상하던 중 조난으로 북조선 어선들에 구조돼 목숨을 구했다"며 "공화국 정부의 인도주의적 정책에 의해 가정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편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적발될 경우를 우려해 대부분의 납북어부가 편지를 이런 식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북한 내 생존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정부가 길용호가 북한에 끌려간 구체적 경위와 선원의 생사를 파악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길용호의 경우 중국납치로 간주돼 선원들은 미귀환 납북어부 435명 명단에 아예 빠져 있다. 통일연구원이 발행한 북한인권백서 2004년판에도 마찬가지다. 2001년 11월 귀환한 납북어부 출신 진정팔씨는 "67년 북한에 끌려간 뒤 해주항에서 길용호를 목격했고, 선원도 만난 사실을 한국에 온 뒤 관계당국에 알렸으나 정부는 믿지 않았고 아직도 납북으로 공식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피랍 당시 공개된 선원 명단에도 빠져 있어 정부가 납북자 파악에 소홀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길용호 사건은=66년 1월 22일 서해 격렬비열도 서북쪽 90마일 공해상에서 부산선적 60t급 어선 길용호가 피랍된 사건.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길용호는 '중국 무장어선인 듯한 배가 총격을 가하고 있다'며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에 네차례 구조를 요청했다. 길용호는 20분간 총격을 받고 14명의 선원과 함께 산둥반도 쪽으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시 영국을 통해 중국에 길용호 선원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중국 측은 '신문을 통해 들었을 뿐 전혀 아는 바 없다'고 통보해 왔고 이후 이 문제가 양국 간에 거론된 적이 없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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