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시인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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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당 (未堂) 서정주 (徐廷柱) 시인이 24일 오후 11시 서울 강남 삼성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85세. 유족으로는 재미 변호사와 재미 의사인 승해 (升海) 와 윤 (潤) 두 아들이 있다. 장례는 28일 오전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전북 고창 선영이다.

올 들어서도 맥주 두서너 병은 거뜬히 마실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던 미당은 지난 10월10일 해로하던 부인이 별세하자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 뒤 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 저세상까지 부인을 따라간 노부부의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 학생운동을 벌이다 30년 구속됐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기소유예됐다.

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 이 당선되고 같은 해 김광균.김달진.김동리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 을 창간하고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38년 첫시집 '화사' 에서부터 97년 15번째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 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으로 새로운 시세계를 일궈내 '시의 학교' 로 불릴 정도로 한국시의 최고 경지를 일궜다는 평을 듣는다.

46년 좌우익 대립 속에서 우익문학단체인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해 시분과위원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77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문단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동국대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의 전신인 서라벌예대 교수로 재직하며 배출한 제자 문인들이 현재 문단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일제 말기의 친일시와 5공시절 전두환 (全斗煥) 씨에 대한 지지 발언등이 미당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부담이 되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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