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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대처式' 대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영화 '빌리 엘리엇' 의 배경은 1984년 영국 북동부의 탄광촌. 마거릿 대처 총리 정부의 강력한 석탄산업 구조조정에 맞서 주인공 엘리엇의 아버지와 형이 파업에 동참한다.

집안이 쪼들리는 와중에도 점차 발레의 매력에 빠져드는 엘리엇의 성장시절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영화 '브래스드 오프' 도 가상의 탄광촌을 내세워 대처 정부의 광산폐쇄 정책을 꼬집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대처 전 영국총리를 처음 '철의 여인' 이라고 부른 것은 구소련의 타스통신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보수당 내의 유일한 남자' 로도 불렸고,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총리는 '코뿔소' 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각료회의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며 단호하게 전쟁을 결정했다 해서 '티나(TINA)' 라는 별명도 얻었다.

'빌리 엘리엇' '브래스드 오프' 나 80년대 중반 영국 철강산업의 몰락이 배경인 '풀몬티' 같은 영화가 묘사하듯 대처 정부는 노조세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84년 3월부터 1년간 계속된 탄광노조 파업은 수천명의 부상자와 50억파운드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지만 대처는 10년 전 탄광 파업으로 무너진 히스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정부의 일관성과 중간층 국민의 차가워진 시선, 노조의 자체 분열로 결국 탄광노조 지도부는 백기를 들었다.

덕분에 보수당은 87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1백46석이나 앞섰고, 대처는 19세기 초반의 리버풀 경 이후 처음으로 세번 연속 총리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반면 노조는 국가차원의 비전을 소홀히 한 대가로 대중의 공감과 지지를 상당부분 잃었다.

회복된 경제 덕분에 영국민의 증권보유율이 급증, 87년엔 전국민의 20%가 주주가 됨으로써 총노조원 수를 웃돌게 됐다.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영국은 대처 총리의 지도 아래 철저하게 개혁을 해서 되살아났다.

일시적으로 국민 고통만 줄이는 데 급급해 개혁을 늦출 수 없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에 관한 최근의 합의과정.결과를 보면 대처를 거론하기가 아무래도 낯간지럽다.

금융개혁만 해도 부담과 뒤탈은 결국 일반 국민이 뒤집어쓸 게 뻔한데도 정부는 노조에 대폭 양보한 모양이다.

자칫하면 대처 전 총리로부터 '개혁은 아무나 하나' 라는 소릴 듣게 생겼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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