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힘내세요” … 가족이 곁에 있어 엄마는 편안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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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셋째 아이를 집에서 낳은 신순화(왼쪽)씨 가족.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을 지켜본 첫째 필규와 둘째 윤정이는 벌써 동생에게 정이 흠뻑 들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아기를 낳고 싶어서 택한 가정 출산 덕에 온 가족이 출산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최정동 기자

집이라는 공간이 출산과 멀어진 지 꽤 됐습니다. “밭 매다가 배 아파서 건넌방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할머니나 어머니의 경험담은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랩니다. 요즘 산모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200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분만 건수 중 종합병원·병원·의원이 차지한 비중은 99.8%였습니다. 나머지 0.2%의 산모는 아기 낳을 장소로 집을 택합니다. 이들은 왜 병원 대신 집을 택하는 것일까요. 산모들은 출산의 기쁨이 더욱 커진다고 말합니다. 낮은 출산율과 낙태 문제로 시끌시끌한 요즘, 집에서 출산한 부부들에게 남다른 출산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군포, 두 아이와 함께 셋째를 낳다
지난달 31일 오후 8시 경기도 군포의 한 아파트. 신순화(40)씨는 저녁상을 물린 뒤 걸레질을 하다가 진통을 느꼈다. 배 속에 있는 셋째 이룸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신씨는 샤워를 하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안방에 자리를 폈다. 예약해 놓은 조산사에게 와 달라고 전화를 하고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진통을 했다. 고통스러울 때는 쿠션을 끌어안고 엎드렸다가 정신이 좀 들면 아이들과 대화도 나눴다. 평온한 분위기였다.첫째 필규(7)는 신씨의 손을 잡으며 “엄마 기운 내세요”라고 했다. 둘째 윤정(3)이는 처음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마 울어요?”라고 묻더니 아기가 나오느라 아픈 거라는 대답을 듣고 웃음을 되찾았다.

자리에 누워 힘 주기를 여러 번.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 서원심(51) 조산사는 “거의 다 됐어요. 이제부터는 몸에 힘을 주지 말고 아이 혼자 밀고 나오게 해야 해요. 아기가 놀라니 소리 지르지 말고 ‘하아, 하아’ 해 봅시다”고 했다. 필규도 “엄마, 이룸이 머리가 나왔어요. 이젠 어깨가 나와요”라고 전했다. 조산사는 아기를 끌어내지 않고 기다렸다. 아기는 신씨의 몸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왔다.

“얘들아, 이룸이가 나왔다.” 남편이 외쳤다. “이룸이 머리에 피가 묻었네.” 윤정이는 신기해했다. 아기는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로 엄마 가슴 위에 눕혀졌다. 희미한 울음을 터뜨리며 바둥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혹시 소리가 클지 몰라 아파트 이웃들에게는 집에서 출산할 계획이라 일러뒀지만 엄마도 아기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서 조산사는 “산모의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몸이 이완돼 산통이 줄고 소리도 크지 않다. 평온한 분위기에서 태어난 아기는 울음소리가 짧고 금세 그친다”고 말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건 분만실의 환한 불빛, 의료기구의 차가운 감촉 같은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잠시 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아기를 씻겼다. 목욕을 마친 아기는 엄마 가슴에 엎드려 젖을 물고 힘차게 빨았다.

“이룸이가 왜 얼굴을 찡그리지.” “아기 배꼽이 이상해요.” “왜 눈을 안 떠요.” “머리가 축축하네.” 아이들은 신나서 떠들며 엄마와 동생 곁을 맴돌았다. 1시간20여 분 만에 집에서의 출산은 무사히 끝났다. 2007년 둘째를 집에서 나은 이후 또 한 번의 ‘가정 출산’이었다.

신씨가 가정 출산을 결심한 이유는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병원은 촉진제를 써서 유도분만을 하거나 제왕절개 같은 수술을 통해 분만을 빨리 마치는 데 관심을 두잖아요.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의 속도로 세상에 나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죠.” 공급자 위주인 병원 출산 대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출산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가능한 한 이러한 의료적 처치를 자제하는 게 모성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산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신씨는 “가정 출산은 가족을 하나로 묶는다”고 말한다. “엄마가 며칠간 (병원으로) 사라졌다가 낯선 아기를 안고 나타나면 큰 애들이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집에서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을 직접 보면 굳이 형제 관계를 설명할 필요도 없죠. 말보다 더 강력한 게 직접 보는 거잖아요.” 남편은 물론 애들까지도 막내 돌보기에 적극적이어서 육아가 한결 수월하다. 서 조산사는 “출산을 끝까지 지켜본 아빠들의 육아 참여율이 높다”고 전했다.

서교동, 출산의 주인공은 산모와 아기
서울 서교동에 사는 이민경(23)씨는 지난해 4월 집에서 첫딸 루나를 낳았다. 처음부터 집에서 출산할 계획은 아니었다. 임신 36주째에 아기가 거꾸로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일주일 뒤에도 아기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제왕절개를 하자고 했다. 가능하면 수술은 피하고 싶었던 그는 상담차 조산원을 찾았다. 그때 조산사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이명화(49) 조산사는 이씨를 보자마자 배 속 아기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만나서 반갑다. 네가 세상 맞이할 때 내가 도울 거야. 우리 잘해 보자.” 아기를 존중해주는 느낌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가 제자리를 찾았고, 이씨는 집에서 출산하기로 결심했다.

가정 출산의 특징은 산모가 자유롭게 진통하고 출산할 수 있다는 점. 이씨는 거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진통을 하다가 부엌 냉장고 앞에 자리를 잡았다. 기운이 빠져 거실에 펴 놓은 이불로 갈 힘조차 없었다. 이 조산사는 “산모가 편한 대로 하자”며 모든 도구를 부엌 쪽으로 옮겼다. 이씨가 진통하는 동안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에 앉아 상체를 받쳐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8시간 내내 아내의 곁에서 진통과 산고를 고스란히 겪어낸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이해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기가 백일쯤 됐을 때 이씨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이때 남편은 사표 쓸 각오를 하고 두 달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이씨는 “출산을 함께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내가 힘든 걸 이해하지 못하고 부부 간 갈등을 키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 이성순(32)씨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이겨낸 아내가 무척 대견하다”며 “아내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나, 그리고 아기가 힘을 합쳐 출산이란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세 사람의 유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부인 이씨는 “대부분의 병원에서(의료진의 편의를 위해) 하는 제모나 관장, 금식,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아도 돼서 만족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하반신을 훤히 드러낸 채 누워 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와서 내진하는 게 상당히 불쾌하다고 해요. 성폭행으로 느끼는 산모들도 있어요.”한 명의 조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출산을 돕는 방식도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 “출산에서 일어나는 과정 하나하나를 쉽게 설명해 주고, 내내 곁에서 진통하기 편한 자세를 잡아주고 마사지를 해 주니 마음이 놓이고 온전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모든 과정을 내가 원하는 대로, 천천히 진행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고양, 자연에 가까운 출산
지난해 11월 고양시 성석동 집에서 둘째를 낳은 차혜경(35)씨는 자연에 가까운 출산을 바랐다. “평평한 분만대, 밝은 수술등, 수술 장비, 소음, 북적거리는 의료진…산모와 아기에게는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환경이에요.”9년 전 첫 아이는 종합병원에서 낳았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근무할 때여서 일반 산모들보다 더 대우를 받았다. 그래도 병원 출산의 기억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자궁 문이 거의 열렸다면서 간호사가 촉진제를 놓으려 하기에 거부했는데, ‘도와드리는 거예요’라며 주사를 놓고 가더라고요. 아기의 스트레스를 감지한다고 심박동 검사기기를 온몸에 붙여 놓아 천장 보고 누운 자세로 꼼짝 못하고 진통을 해야 했고요.” 매뉴얼화된 병원식 분만 방법이었다. 의사의 시간에 맞추거나, 산모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약물을 썼다. 산모를 환자 취급하는 것도 싫었다.

“출산은 질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인데 병원에 가면 환자가 되죠. 누구나 관장을 하고, 링거를 꽂고, 수술 상황에 대비해 금식을 시키잖아요. 아기를 낳은 직후에는 잠깐 가슴에 올려놓는가 싶더니 바로 신생아실로 데려갔어요.” 갓 태어난 아기의 눈에 항생제 용액을 넣는 등 각종 약물 처치도 불안했다.

둘째를 낳을 때는 많이 달랐다. 진통이 시작되자 차씨는 삼겹살을 구웠다. 진통을 하려면 힘을 내야 하니까.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맛있게 먹었다. 물도 수시로 마셨다. 창문마다 커튼을 치고 은은한 스탠드를 준비했다. 어두컴컴한 엄마 배 속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아기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간호학 박사인 차씨는 “아이가 세상에 나온 첫 경험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가정 출산을 택했다”며 “소독약 대신 엄마 냄새, 주변의 낯선 소음 대신 엄마 심장 소리, 차가운 의료기구 대신 엄마 품을 먼저 만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병원 분만보다 2~3배 비싸
김옥진조산원 김옥진(51) 원장은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20~3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가정 분만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달 집에서 첫딸을 낳은 탤런트 김세아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정 출산은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며 “아이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은 자연분만이고 두 번째는 모유 수유”라고 말했다.

이민경씨는 섬유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고, 남편은 공공 디자이너다. 이씨는 “평소에도 쌀뜨물을 발효시켜 세제를 만들고, 양파껍질을 모아 천연염색 원료를 만들어 쓴다”며 “아이를 낳는 것도 자연친화적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혜경씨는 텃밭에 채소를 직접 가꿔 먹고, 강아지와 토끼를 키운다. 큰 애는 홈스쿨링으로 가르친다. 약물 처치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해 아이들에겐 예방접종도 하지 않는다. 차씨는 “모두가 병원 출산에 대해 ‘예스’라고 할 때 ‘노’ 하려면 지식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엄마들의 열정이 출산에서도 나타난다는 해석도 있다. 행복한이명화조산원 이명화(49) 원장은 “아기가 출생의 순간을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편안한 것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며 “편안하게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찾다 보니 엄마들이 가정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곱게 자란’ 젊은 산모들이 출산할 때도 자신만을 위한 특별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도 가정 출산의 인기 요인이다. “진통하는 내내 정서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진통을 완화해주는 각종 요법도 해주고… 전문가 한 사람이 계속 지켜주니까 마음이 편안해요.” 가정 출산 비용은 90만~100만원으로, 병원에서 정상 분만을 할 때보다 두세 배 비싸다.

누구나 가정 출산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간호학 박사인 차혜경씨는 “가정 분만은 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어야 하고, 산전 검사를 철저히 하는 등 병원 출산보다 세심하게 준비할 게 많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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