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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 성매매 정말 줄이려면…동서고금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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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선 세종대왕 시절 유교 윤리를 앞세운 일부 관리들이 왕에게 관기(官妓) 폐지를 건의했다. 기생 때문에 선비들 사이에 추잡한 반목이 생기고, 유흥의 폐해가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

나중에 좌의정까지 지냈던 청백리 허조(1369~1439)는 당시 "남녀관계는 인생의 큰 욕구 중 하나로 금할 수 없다. 관기를 없애면 젊은 관리들이 여염집 처자를 범해 훌륭한 인재들이 벌을 받게 된다"면서 폐지를 반대, 뜻을 관철했다. 중종 때 대사헌이던 조광조(1482~1519)는 관기 등이 행하던 가무와 풍류인 여악(女樂)제도를 폐지해 퇴폐풍속을 뜯어고치자고 왕에게 건의했다. 이 역시 반대의견에 부닥쳐 좌절됐다. ('조선의 성풍속', 정성희, 1998년/'조선시대 생활사', 안길정, 2000년)

우리나라에서 성매매 정책은 해묵은 논란거리였다. 해방 이후에도 성매매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계적으로 처벌수위를 강화해 왔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데다 성매매를 관대하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다.

지난달 23일 성매매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성매매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국민 사이에 인신매매.감금 등에 의한 성매매가 엄벌받고, 장기적으로 성매매가 근절돼야 한다는 총론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성매매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매매 산업 규모는 연간 2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1%를 차지했다. 또 성매매 종사 여성 수는 33만명으로 추정됐다. 성매매 종사자가 최대 15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여성단체도 있다.

새 법을 강력하게 지지해온 국내 여성단체들은 '자발적 성매매란 없다'는 입장이다. 남성이 돈만 내면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을 수 있어 여성의 '자발성' 여부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성매매를 강간 등과 같은 범죄이자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새 법에서 성매매 알선 및 인신매매.감금 등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되고, 성매매 여성이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처벌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여성단체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처벌과 단속 일변도 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집창촌 단속 이후 주택가 등으로 성매매 산업이 침투하는 등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대 전용덕(경제학) 교수는 "수요가 있을 때 법을 앞세워 우격다짐으로 단속하면 암시장만 키우는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올라오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성매매는 음주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지 국가가 막을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 7일 시위에 나섰던 성매매 여성들이 "요즘 세상에 누가 강제로 성매매를 하느냐"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독일의 경우 2001년 말부터 성매매를 서비스업으로 합법화했다. 독일은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고용계약을 통해 의료보험.실업수당.연금 등의 사회보장혜택을 주고 있다.

형사처벌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성매매를 줄여나갈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인권과 권익 보호, 재활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성매매 근절의 당위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성매매 여성의 구체적인 권리를 법제화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화순 한국여성개발원 상임 연구위원은 "바람직한 성교육 등을 통해 성매매 인구 자체를 줄여 나가고, 가난하고 일자리 없는 여성들이 성매매 시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성매매를 없앨 수 있는 장기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goodjob@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사진설명]
터키 남쪽 에페스의 한 도로에는 발자국 새김과 화살표, 고대 글자가 적혀 있다. 기원전 7~6세기에 새긴 것으로 보이는 이 글자는 '화살표를 따라가면 유곽이 나온다'는 의미다. 발자국 새김은 발이 이보다 작은 사람은 오지 말라는 뜻(미성년자 출입금지)이란다.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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