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나간 엄마 대신 부엌일 도맡았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경제가 안 좋다보니 서점에 가면 '단돈 몇천원으로 해먹을 수 있는…' 식의 제목이 달린 요리책이 수두룩하다. 이런 류의 요리책으로 가장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는 것이 자취생활 18년차인 노총각이 자장면 한그릇 값으로 세끼를 해결하는 생존법을 공개한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 지난해 11월 발간 직후 요리책으론 보기 드물게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의 상위권을 점령한 이 책은 지금까지 30만부 이상 팔리며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았다. 저자 김용환(33)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namool.com)는 초등학생부터 베테랑 주부까지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이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인기 사이트가 됐다(최근 하루 평균 페이지뷰 약 6000건).

여세를 몰아 중앙m&b와 손잡고 12월께 두 번째 요리책을 낼 예정인 김씨를 만나 인기 비결을 물었더니 대뜸 "쉬워 보여서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복잡한 요리법도 사진 몇 장, 글 몇 줄로 간단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독신 남녀나 초보 주부도 '요리가 별 게 아니네'라고 느끼게 만드는 거죠."

이 때문인지 그의 책은 '천생연분' 등 신혼 부부가 주인공인 TV 드라마에 단골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요즘 방영 중인 '아일랜드'에서 새댁으로 나오는 탤런트 이나영이 팔굽혀 펴기를 하는 남편 등에 걸터앉아 골똘히 읽던 책도 바로 '2000원…'이다. "돈 안 들이고 책 홍보한 것도 좋았지만 평소 흠모하던 이나영씨가 책을 들고 나온 게 더욱 감격스러웠다"고 김씨는 말했다.

네티즌들에겐 필명인 '나물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김씨는 본디 화가 지망생(중앙대 한국화과 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친구 작업실에 얹혀 살면서 웹 디자인도 하고, 동화책 삽화도 그리며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중 소일거리 삼아 자신의 '서민적'인 요리법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따라하기 쉽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책까지 냈고, 이제는 프로 요리사 부럽지 않은 요리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다. 김씨의 말마따나 "책 한권으로 인생 역전을 한 셈"이다.

"요리 학원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들길 좋아하긴 했죠. 어머니가 아침 일찍 공사장 식당일을 나가셨기 때문에 온종일 부엌을 독차지하고 동생들을 거두어 먹인 게 제 요리 공부의 전부였어요."

대학 다닐 땐 닭백숙이며 추어탕이며 친구들의 술안주를 도맡아 요리해주었다는 김씨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사람들이 맛있다고 할 때 그 뿌듯한 기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책 인세를 받아 경기도 퇴촌에 텃밭이 딸린 농가 한 채를 샀다"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과 요리를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