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노자를 웃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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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 노자(老子)를 웃긴 남자(男子)

-이경숙 지음,자인,9천8백원.

도올 김용옥이 임자를 만났다.EBS 텔레비전 강의로 화제를 모았던 도올의 ‘노자와 21세기’에 대해 한 여성이 도발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나선 것.

책 제목의 노자를 웃긴 남자는 바로 도올을 겨냥한 것이다.하지만 도덕경 1장에서 10장까지 번역 해설하고 있는 이 책은 거칠은 비난과 점잖치 못한 표현을 제외한다면,기존의 도올 비판서와 분명히 차별화 되는 점을 갖추고 있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노자의 도덕경을 대중화시킨 도올은 그녀가 염두에 둔 프로젝트에 포획된 디딤돌이다.선입관을 배제하고 볼 때 곳곳에서 통찰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도덕경 2천5백년의 해석사를 뒤집어버리려는 원력(願力)의 시도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주목거리다.저자가 보는 도덕경은 한마디로 정치사상서이다.

사계의 정설일 수도 있는 정치사상서라는 해석이 흥미로운 것은 이 관점을 도덕경 전체에 관철시키려는 철저함이다.같은 장 내에서도 단락마다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모호한 번역과 억지로 끼워맞추는 해설들이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을 괴롭혀온 것이 사실이었다.

저자가 볼 때 이 점에서 도올도,그리고 도올이 존경하는 위진시대 천재사상가 왕필도 예외가 아니다.

또 한가지,저자가 볼 때 도덕경에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글자는 단 한 자도 없다.철저히 성인(聖人)의 정치행위라는 맥락에서 일관성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백(營魄)은 국민의 넋 혹은 마음 다시말해 민심(民心)을 뜻한다.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 이것이 치국(治國)의 요체라는 것이다.전기치유(專氣致柔)란 백성들의 기운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뜻이다.

2장에서 ‘위(爲)’자를 일관되게 ‘(거짓으로) 꾸미다’로 해석한 점도 돋보인다.저자가 볼 때 도덕경을 푸는 열쇠는 ‘위(爲)’라는 한 글자다.

위자를 ‘되다’‘행하다’ 등으로 편리한 대로 갖다 풀이해선 안된다.위(爲)자를 위(僞)자로 푸는 기존의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 책의 특징은 논리적 맥락을 철저히 관철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도덕경의 1장을 결론 혹은 총론으로 본 기존의 해석과 달리 도(道)라는 이름에 대한 설명을 하는 서론에 해당하며 중심어휘도 명(名)이라고 주장하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언뜻 시시콜콜한 자구해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도올의 텔레비젼 강의에 계몽된 독자라면 그 번뜩이는 기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그것은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다.저자 이경숙(41)에 대해선 인터넷 천리안에서 Clouds(구름)이란 ID로 인기를 끌었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정보가 없다.이 글도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다 출판인의 눈에 띄어 출간하게 된 것.

출판사측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책속에서 저자는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누구의 해석이 더 옳고 설득력이 있느냐 하는 것은 책 자체를 놓고 판단해야지 학벌의 권위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도올의 도덕경 텔레비젼 강의를 보고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컴퓨터 통신에 재미있게 글을 띄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출판과정에 추천해 주신 분들이 그냥 통신 글 그대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일부 거친 글도 수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무리 학문의 세계는 실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지만,책 속에서 보이는 과감한 비난과 조롱 뒤에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소극성은 책의 빛나는 통찰과 상상력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으며,자칫 ‘도올을 웃긴 여자’로 전락될 위험도 없지 않다.자유로운 고전 해석의 열린 장에서 두 사람이 펼칠 멋진 무대를 기대해 본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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