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MF협상 빨리 하라" 클린턴, 환란때 YS에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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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1997년 12월 구제금융 협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김포공항에서 강만수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왼쪽)의 마중을 받으며 입국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통령에게 세계 6대 교역국과 7대 경제대국을 위한 '21세기 경제 장기구상'을 보고했는데, 위기를 앞둔 헛소리의 백미였다. 8% 단일관세율과 고평가된 환율이라는 최악의 정책조합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옛 재정경제원) 차관은 이런 착오가 겹치면서 97년 외환위기가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강 전 차관은 70년 경주세무서 사무관부터 98년 3월9일 재경부 차관 이임식까지 28년간의 공직생활을 회고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삼성경제연구소.사진(下))을 8일 발간했다. 금융.세제.국제금융의 요직을 두루 맡고 뉴욕재무관까지 경험한 강 전 차관은 부가가치세 도입부터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금융자율화와 금융시장 개방, 외환위기까지 한국 경제의 격동기에 직접 체험한 일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실전 경제학이고 체험 경제사라고 자부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는 96년12월 통산산업부(현 산업자원부) 차관을 맡으면서 원.달러 환율 절하가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했고, 97년3월 재경부 차관으로 옮긴 뒤 환율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싸고 재경부와 한은의 감정이 악화한 상태였다. 강 전 차관은 원.달러환율이 900원을 넘게 놔두도록 한은에 요구했지만, 한은 간부는 "달러당 890원이 마지노선이다. 그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강 전 차관은 제일은행 매각 등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대응에도 적지 않은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제일은행에 대해 당시 전액 감자후 매각이나 청산 등의 조치를 바로 취했다면 15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바람에 뉴브리지캐피탈에게 큰 이득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또 캉드쉬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정리해고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 등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에서도 미적거리다가 97년 11월28일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빨리 협상을 끝내라"는 경고 전화를 받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강 전 차관은 금융실명제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도입됐지만 정치보복의 칼로 더 많이 사용됐고, 부동산실명제는 요란하기만 했을 뿐 해프닝에 가까운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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