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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노인과 함께] 외로운 노인의 친구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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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98세 된 노모를 모시고 살던 75세 할머니가 있었어요. 1998년 노모가 돌아가시면서 '보살펴 줄 사람없는 내 딸을 가끔 찾아와 주구려' 라고 부탁하시더군요. 그 어머니의 사랑만큼은 안돼도 외로운 노인들을 보살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일대 32가구의 독거(獨居)노인들에게는 3명의 다정한 친구가 있다. 5년째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고 있는 은빛공동체 박진승(朴鎭昇.41)목사. 그리고 그를 돕는 자원봉사자 정대숙(45)씨와 인근 가정의학과 의사인 김규회(金圭會.41)원장이 그들이다.

朴목사가 반찬 배달을 시작한 것은 96년 9월. 용두동 일대에서 혼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방문해 말벗 역할을 하던 朴목사는 한 독거 할머니를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다.

점심을 준비하는 할머니에게 "맛있는 거 드시려고요" 라며 농담을 건넸던 朴목사가 본 밥상에는 말로만 듣던 간장 한 종지가 반찬의 전부였던 것. 이날부터 朴목사의 반찬 배달이 시작됐다.

기아대책기구와 서울.경기도 일대 교회들로부터 후원을 부탁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소형 승합차에 가득 반찬거리를 구입, 화요일이면 1주일 분량의 반찬을 꼬박꼬박 배달했다.

그러나 최소한 서너가지 병을 앓고 있는 노인들의 건강도 큰 문제였다. 4년 넘게 朴목사를 짓누르던 걱정이 지난 5월부터 해소됐다.

朴씨와 동갑내기 의사인 김규회씨가 무료 진료를 자청하고 나선 것. 金원장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집을 직접 방문, 진찰을 시작했다.

金원장은 "혼자 내버려 두면 위험한 노인 환자들이 상당수" 라며 "힘이 닫는 데까지 치료해 드릴 생각" 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부터는 새로운 자원봉사자 정대숙씨가 반찬 배달과 노인 돌보기에 합류했다.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주부 鄭씨는 자신의 승용차로 매주 화요일 반찬 배달을 맡았다.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鄭씨의 몫이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독거 노인 3명도 돌보고 있는 鄭씨는 "불우한 이웃들에게 연말에만 반짝 관심을 갖기보다는 항상 챙겨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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