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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나라 체면 구긴 '진흙탕 35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미 연방대법원이 12일 수작업 재검표를 명령한 플로리다주 대법원 결정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론지음으로써 미 대선 법정공방 사태가 종지부를 찍었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천신만고 끝에 사실상 당선자로 확정된 것이다. 지난달 7일 1억명의 미국인들이 투표한 지 35일 만이다. 이번 결정으로 막을 내린 대선 '개표 드라마' 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8일 오전 2시(현지시간).

전날 치러진 선거의 개표에서 서너개 주를 제외한 지역의 승패 윤곽이 드러나자 미 방송사들은 서둘러 부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했다고 보도했다.

각국 정상들은 부시에게 부지런히 축전을 보내기 시작했고, 앨 고어 민주당 후보도 부시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했다.

그러나 곧바로 상황이 뒤집어졌다. 플로리다주에서 부시와 고어의 표차가 1천7백84표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져 자동으로 재검표가 시작됐다.

주 법에 1, 2위 후보간 득표율차가 0.5% 미만이면 재검표하도록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고어는 부시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축하를 취소했다.

이때부터 누구도 예측 못했던 혼란이 시작됐다.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에서 투표용지가 이상하게 도안돼 무효표가 양산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민주당은 소송을 준비했다.

재검표에선 고어가 부시를 한때 2백여표 차로 추격하며 역전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결국 부시가 3백여표 차로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는 정권 인수 작업을 시작한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너무 성급했다. 해외 부재자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수작업 재검표 문제가 불거졌다.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측 요구를 받아들여 손으로 일일이 투표 용지를 확인하는 재검표를 시작했다. 그 결과 고어의 표가 쑥쑥 늘어났다.

다급해진 부시측은 먼저 법원으로 달려갔다. 수작업 재검표를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지만 허사였다.

그러나 공화당원인 캐서린 해리스 플로리다주 내무장관이 "개표 결과를 14일까지만 받겠다" 고 선언, 시간적으로 수작업 재검표를 할 수 없도록 만들자 고어측은 이 법원 저 법원에 소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재검표 결과가 집계돼 부시가 플로리다주에서 9백30표차로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며칠 뒤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수작업 재검표를 할 수 있도록 개표 집계 시한을 연장하라고 고어 후보의 손을 들어주자 또 한번 기막힌 반전이 이뤄졌다.

그러자 이번엔 고어측이 가장 기대를 걸었던 마이애미 - 데이드 카운티가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수작업을 중단, 부시와의 표차를 줄여 나가던 고어 진영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고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법원에 기표가 부정확해 무효로 처리된 표들을 다시 검표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당원들은 세미놀.마틴 카운티의 부재자 투표지 일련번호 기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소송도 냈다.

주 대법원은 주내 모든 카운티에서 수작업 재검표를 하라고 결정해 사퇴압력을 받던 고어측은 다시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다시 주 대법원의 재검표 결정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부시의 승리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고어 진영의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고 '재검표 위헌' 을 결정, 법정공방에 쐐기를 박았다.

유권하.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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