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지도부 민심 체험나갔다 기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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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라를 이꼴로 만들었으면 죄송하다고 해라. " (인천지역 당원)

"지도부가 권력 투쟁으로 내분만 일으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 (서울지역 당원)

12일 수도권의 민생 현장을 찾은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 권노갑(權魯甲).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 등 지도부는 험한 밑바닥 민심을 체험해야 했다.

일선 당원들은 "민심이 떠나간다" 며 지도부를 규탄했고, 상인들은 "IMF 때보다 살기 어렵다" 고 탄식했다. 徐대표는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경제와 민심이)나쁠 줄 몰랐다" 고 말했다.

민생 탐방에는 최고위원 11명이 나섰다. "당내 갈등을 넘어 민생을 돌보자" (朴炳錫대변인)는 취지에서였다. 탐방팀은 의원 30여명과 함께 5개조로 나뉘어 서울 구로.성동구, 인천시 남구, 경기도 평택.동두천.양주 지역을 둘러봤다.

◇ "노벨상 얘기 그만하라" 〓인천의 한 지구당 사무국장은 박상천(朴相千).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과의 간담회에서 "유권자들에게 아무리 우리 당을 믿으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 며 "이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지도부 탓인 만큼 뺨을 때리면 맞고, 몸도 낮추라" 고 질책했다.

그는 "위기의 본질은 국민 신뢰가 무너진 데 있다" 면서 "대통령도 노벨 평화상 얘기를 그만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이 지역 한 원외지구당 위원장은 "요즘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입당을 권유하면 민망할 정도로 거부한다" 면서 "대통령도 이젠 내치(內治)에 전념할 때" 라고 강조했다.

평택갑 지구당의 한 부위원장은 권노갑 위원과의 간담회에서 "초등학생들까지 대통령과 정부를 욕할 정도로 엄청난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고 했고, 다른 부위원장은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나고 있는데 당에서는 공허한 얘기들만 늘어놓고 있다" 고 꼬집었다.

또다른 부위원장은 "금융 비리가 잇따라 터져 창피해 죽겠다. (학력 변조로 물러난)박금성'(朴金成)'씨를 서울경찰청장에 앉힌 것도 문제다. 제발 잘 좀 해달라" 고 호소했다.

◇ 상인들의 아우성〓구로시장을 찾은 徐대표에게서 "경기가 어떠냐" 는 질문을 받은 포목점 주인 유선순(71.여)씨는 "이렇게 살기 어려운 때는 없었다" 고 한탄했다.

이어 "부모님 용돈 드릴 돈도 안나온다" (야채가게 주인), "밥좀 먹고 살게 해달라" (행상 할머니)등의 탄식이 나오자 徐대표는 "아이구.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 며 달래는 데 진땀을 뺐다.

평택시 서정리 재래시장에서 權위원 일행은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는 지적도 들었다.

◇ 친권(親權).반권(反權)측의 시각차〓당원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최고위원들은 '친 권노갑' '반 권노갑' 성향에 따라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權위원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단합하자" 면서 "대통령과 국가를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이므로 믿어달라" 고 호소했다.

權위원과 가까운 이인제 위원도 "구분하고 대립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쪽의 책임이나 퇴진이라는 식의 양분법적 생각은 안된다" 고 말했다.

반면 '權위원 2선 퇴진론' 을 제기했던 정동영 위원은 "민심이 원하는 것은 변화이나 우리당은 그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며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고 강조했다.

중도 진영의 박상천 위원은 "정부의 힘이 너무 약해졌다. 장관들 중에는 밀어붙이다가도 시민단체.노조 등이 반발하면 무서워 말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고 꼬집었다.

이상일.박승희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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