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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술자리 단합으로 끝낼 일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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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 측근들은 과연 현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민주당의 동교동계 인사들이 2선 후퇴론을 둘러싼 내부 싸움으로 티격태격하며 국민을 피곤케 하더니 기껏 술 모임을 갖고 내놓은 해법이 '내부 단합' 이다.

국가적 위기국면에서 대통령 측근세력들이 싸움질이나 하고 있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쏠린 국민의 소리없는 질책은 그대로 방치한 채 단합만 외치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지난 청와대 모임에서 제기된 동교동계 실세(實勢) 퇴진론은 이권.인사개입 소문을 그 근거로 꼽았다. '제2의 김현철' 이란 말까지 나왔다.

공격받은 쪽이 터무니없는 소문 때문에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고 반발하고 나서 소문의 실체를 자세히 알 길은 없다.

다만 당 내부에서 그런 지적이 나올 정도로 시중엔 동교동계 실세들에 얽힌 각종 소문이 많이 나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평소 몸가짐을 어떻게 했길래 그러한 잡음들이 그치지 않는가. 박금성(朴金成)서울경찰청장 조기퇴진 소동은 경찰의 정실인사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연줄대기로 온 경찰이 술렁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며 소문의 뿌리엔 어김없이 동교동계 실세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고 시치미떼니 그렇다면 朴청장의 초고속 승진을 능력 때문이었다고 믿으란 말인가. 잡음의 발원지라는 사실만으로도 동교동계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국민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교동계는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친권(親權)' 이니, '반권(反權)' 이니 자기들끼리 패를 갈라 티격태격해왔다.

며칠 동안 계속된 동교동계 내분에선 자기 몫 찾기 권력다툼만 비춰졌을 뿐 국정위기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동교동계는 정권창출의 공로자이자 현재 민주당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책임자들이다. 자신들에게 국정위기의 책임론이 제기됐으면 당연히 민주당의 중심 화두는 위기타개책이어야 했다.

위기의 핵심이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권력남용이었다면 그 실체를 먼저 조사했어야 했다. 조사결과에 따라 대책이 나와야 했다. 비위 사실이 있다면 엄하게 문책하고 일벌백계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없다면 무고자를 문책하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저런 노력도 없이 그저 술자리 한번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그런 조직이 공당(公黨)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현 국정위기의 중요한 요인은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不信)이다. 불신은 거짓말과 인치(人治)에서 비롯됐다. 동교동계 측근정치는 바로 인치의 큰 줄기다. 국정쇄신의 핵심이 무엇인지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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