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사업하려면 SK 같은 ‘성심’보여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한국 기업인 여러분,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나요? 그렇다면 ‘성심(誠心)’을 보여 주세요. SK그룹이 좋은 예랍니다.”

중국 베이징TV의 간판 진행자인 쉬춘니(徐春妮·32·사진)의 말이다. 그는 SK그룹이 후원하는 중국판 장학퀴즈 ‘SK장웬방(壯元榜)’을 지난해 말까지 10년간 진행한 뒤 후배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한국 장학퀴즈와 중국 장웬방 입상자들의 교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를 9일 만났다.

쉬가 장웬방을 맡은 것은 새내기 아나운서였던 2000년이다. 그는 “방송 전까지는 한국에 SK란 회사가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텔레콤·에너지·네트웍스 등 SK의 계열사를 줄줄 꿴다. SK는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중국 고교생 3000여 명에게 회사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놨다. 출연 희망자까지 따지면 10만여 명이다. 이들의 부모·친지로 대상을 넓히면 수가 더 늘어난다.

“SK는 장웬방을 후원하면서 상품 광고를 전혀 안 했다. 청소년의 패기, 선의의 경쟁 등을 강조한 공익광고만 내보냈다. 외국 회사지만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가 스타 방송인으로 성장한 뒤에도 10년간 청소년 프로그램인 장웬방을 지킨 이유 중 하나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 나설 정도로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

장웬방에 관심이 많은 건 고교생과 학부모만이 아니다. 쉬는 “허베이(河北)성 출신 학생이 연 장원전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었다”며 “방송을 본 허베이 성장이 해당 학교에 20만 위안(약 3400만원)의 장학금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고위 관료들도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SK장웬방에서 주 장원 이상을 차지한 학생의 90% 이상은 칭화대·베이징대 등 중국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해외 우수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생·사회인이 된 뒤에도 장웬방을 못 잊고 연락해 오는 사람도 많다. 쉬는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을 간 출연자가 e-메일로 직접 만든 문제를 보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행사장에서 두 번 만났다고 했다. “최 회장이 ‘우리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 줘 고맙다’고 하더라”며 “속이 깊은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때 중국 내의 반한(反韓)감정이 이슈가 됐을 때 프로그램에 지장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쉬는 “공익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인식 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SK가 방송을 통해 단기적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