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일류가 세계 일류에게서 한수 배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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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64KD램을 개발할 때 연구팀이 무박 2일로 64㎞ 행군을 했습니다. 독하게 했죠. 글로벌 전쟁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였지요.”

지난 5일 경기도 기흥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강사가 반도체 개발진의 뜨거운 열정을 설명하자 30여 교육생은 머리를 끄덕였다. 경영혁신, 인사혁신 사례가 발표될 때마다 수강생들은 감탄 반, 부러움 반의 표정을 지었다.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를 하는 손길도 분주했다. 여기까지는 삼성전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의 성장 DNA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의 손님들은 특별했다. 국내 최대 금융사인 삼성생명의 이수창(사진)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수강생이었다. 이 회사 임원과 기획담당 부장 등 76명은 이달 4~5일과 8~9일 두 차례로 나눠 삼성전자 수원 인재개발원과 기흥사업장을 찾았다.

두 회사는 삼성그룹의 양대 축이다. 국내 제조업과 보험업 1위는 언제나 삼성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역량은 차이가 났다. 전자는 이미 ‘세계 일류’로 도약했지만 생명은 ‘한국 일류’에 머물러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번 교육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글로벌 리더가 되자는 의지였다. 아이디어는 이수창 사장이 냈다.

“ 삼성전자의 성장 DNA를 보고 배워 영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삼성전자보다 못할 게 없다는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장을 앞두고 회사는 ‘제2의 르네상스’를 외쳤다. 삼성생명은 2008 회계연도(2008.4~2009.3)에 매출 25조원, 당기순이익 1130억원을 올렸다. 금융위기로 글로벌 초일류 금융회사의 도산이 속출했지만 회사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부족한 게 많았다. 글로벌 시장에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국내 1위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문제는 글로벌 시장에 도전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삼성전자를 공부하게 됐다. 특별교육의 울림은 컸다. 반도체·TV·휴대전화의 성공 신화를 쓰기 위한 처절한 경쟁 스토리에 임원들은 귀를 기울였다.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 세미나에 참가해 슬라이드 내용을 그대로 적어 왔죠. 슬라이드가 빨리 넘어가 적지 못하면 엉뚱한 질문을 해 슬라이드를 다시 틀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강의를 들은 한 임원은 “글로벌 경쟁의 치열함에 놀랐다”며 “우리가 너무 안주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른 임원은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삼성생명 임원들은 지난해 12월 파주시청의 혁신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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