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바위에 새긴 풍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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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병풍같이 깎아 세운 암벽 반구대에서 1972년 암각화(岩刻畵)가 발견됐다.

고래 등 고기 잡는 모습과 호랑이.사슴 등을 사냥하는 모습 등이 활기차게 새겨진 이 암각화의 발견은 우리의 선사시대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준 유적으로 꼽히며 95년에 국보 285호로 지정됐다.

암벽 상단 부분에 60여마리의 고래와 함께 배.작살.그물 등을 이용한 어로 장면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태화강을 중심으로 한 울산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기지였다는 추정이 나왔다.

이 암각화는 모두 파기, 윤곽선 파기, 상징적 표현 등 세가지 형식이 나타나고 있어 신석기시대 말부터 청동기시대 말까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암각화는 그 어디에서도 다시 찾아보기 힘든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의 창이고 나아가 기록 자체로 볼 수 있다.

교미를 하고 있거나 새끼를 밴 동물들이 많고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된 남성이나 여성의 생식기 등을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또 시베리아 일대에서 발견되는 암각화와 비교해 민족의 이동 경로와 함께 동물과 어울려 상생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선사시대의 주술.제의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되기 몇해 전의 댐 축조로 인해 1년 중 8개월은 물 속에 잠겨 있다.

그와 함께 암각화와 관련된 또 다른 유물들이 물 속이나 땅 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때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 일대를 선사유적관광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상품화하려 하자 전문가들이 유적훼손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물 속에 잠겨 날로 훼손돼 가는 암각화의 원형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먼저 마련하라는 것이다.

선사(先史)시대는 문헌자료가 전혀 존재할 수 없는 시대다. 따라서 암각화 등의 유적.유물만이 그 시대를 전하는 창구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이나 현대인들도 인간의 근저, 무의식이나 꿈 그리고 기원(祈願)등에서는 같다.

그들은 우주만물과의 상생과 그로 인한 풍요의 소망을 수직의 바위에 새겨나갔다. 먼 후세까지에도 그들의 삶과 꿈을 길이 전하려 한 것들을 우리는 우리의 편의만 위해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둘러볼 일이다.

이경철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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