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병은 알리라고 하였다.
이 사람 저 사람 한마디씩 하는 것이 다 옳지는 않겠지만 그런 과정에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낫게 하는 지혜도 배울 수 있다.
요즘 경제가 다시 어렵다고 사방에서 난리지만 솔직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알기 시작했으니 해답을 구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 벼락치기라도 확실하게
사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위기란 단어를 꺼내기가 민망할 정도로 역풍이 거셌다.
경제는 속으로 골병이 드는데 그저 외환보유액이나 들먹이며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할 말을 하면서도 송구스러워하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점쟁이도 아니고 이 정권에 한 맺힌 사람들도 아닌데 누가 위기가 꼭 다시 올 것이라고 염불을 했겠는가.
퍼 담지도 못할 부실을 파헤쳐만 놓고 이런식으로 편하게 지내다 보면 병이 도질지 모른다고 걱정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돌아온 대답은 지나친 비관론은 오히려 경제를 해친다는 비난이었다.
요즘은 어떤가. 너나 할 것 없이 구조조정 타령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돈 좀 풀자라는 말이라도 꺼내면 여지없이 타협론자로 몰리는 세상이다.
사실 실업대응과 경기조절 목적을 겸한 적절한 단기대책은 구조조정을 추진할 정부능력에 보탬이 되는 측면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따져보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리는 경직된 태도로는 좋은 정책을 구상하기도, 남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부도 못믿겠고 전문가도 못믿겠다는 얘기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왜 매사를 숨기려고만 드느냐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제갈량도 아닐진대 문제를 모를 수도 있고 잘못된 처방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가진 정보를 제때 공개하고 정책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면 되레 실수할 확률도, 책임질 일도 줄어들 것이다.
전문가들이 못마땅한 이유는 왜 할 말을 제때 못하고, 또 자신과 다른 견해를 용인할 아량이 없느냐는 것이다.
위기 가능성이 과장됐다고 안심하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실업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경기부양은 안된다고 하니 일반 시민들은 답답한 것이다.
지금 국민을 지극히 냉소적으로 만드는 것은 구조조정은 내년 초에 끝날 것이며 그 후에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과 현재의 위기감은 심리적 요인이 크므로 국민들 스스로 생각을 바꿔먹으라는 훈계다.
어쩌면 민심을 이리도 모를까. 정반대로 '구조조정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처음 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 라는 식으로 나왔으면 정 많은 우리 국민은 '몇 십년 누적된 부실인데 어찌 모든 것이 이 정권 책임이냐. 정책이란 시행착오도 있는 법이다' 라고 화답했을 것이다.
눈앞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첫걸음은 모든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여러사람의 지혜를 모아가는 것이다.
무릇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숨기고 싶어하고 남의 의견을 용납하지 못한다. 반도체값 하락이나 고유가와 같은 외부충격도 있었지만 우리 경제가 다시 시들어가는 근본 원인은 내부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두 과목 골라 집중공략
또 다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걸하러 간다고? 전쟁 폐허에서 불과 몇십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문턱에 올랐던 나라의 자존심 문제다. 위기를 밥먹듯 하는 삼류국가들에 적용하던 잣대를 가지고 우리를 심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껍데기 통계에 의지한 외국사람들의 한마디에 여론이 좌지우지된다면 낯 뜨거운 일이다.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풀 지혜는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다만 그것을 모으고 선택하는 방식이 서툰 것이다.
공부는 평소에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시험 때만 되면 벼락치기를 하는 것이 사람살이다.
늦었지만 한두과목이라도 확실히 건져 재기의 발판을 다지겠다는 냉정한 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간도 없는데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허둥대면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할 일의 우선순위부터 정하고 한번에 하나씩 온 힘을 기울일 때 민심도, 경제도 다시 손에 잡히게 될 것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