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2명 억류 땐 클린턴까지 방북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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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42일간 억류됐다 풀려난 대북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28·사진)씨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별다른 석방 협상을 벌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2월 24일 박씨가 자진 입북한 직후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박씨가 북한 당국에 억류돼 평양으로 이동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스웨덴 대사관 측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박씨를 여러 차례 접촉해 안전한 상태인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확인해 통보해줬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 같은 통상적인 영사적 접근 외에 박씨의 석방을 위해 북한 당국과 별도의 협상을 벌인 것은 없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 당국도 미국 정부에 박씨의 석방을 조건으로 대가를 요구하거나, 특정 인물을 사절로 보내달라는 등 협상을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그러다가 지난 6일 자진해서 박씨를 석방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북·중 국경지대에서 취재하다 북한 경비병에게 붙잡혀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해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앨 고어 전 부통령까지 등장해 북한과 미국간에 석방 교섭이 벌어졌다.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두 사람은 140일 만에 풀려났다.

소식통은 “자신들의 뜻에 반해 북한에 강제 억류됐던 여기자들과 달리 박씨는 자진해 입북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을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북한 당국도 인권운동가인 박씨를 계속 억류해봤자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씨가 억류 기간 중 건강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큰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도 북한 측이 박씨를 조기에 석방한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박씨의 석방은 북한의 대미 유화 제스처라기보다는 북·미 간에 큰 정치적 의미가 없는 일회성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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