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DJ가 정말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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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은 단순히 경제위기만이 아니다. 정부의 신뢰위기요 도덕성위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들으니 과거엔 시집 안간다는 노처녀,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 밑지고 판다는 상인의 말이 3대 거짓말이었는데 요즘엔 구조조정은 원칙대로 한다, 공적자금은 이번이 마지막, 사정에 예외 없다는 정부의 말이 신판 3대 거짓말이라는 얘기가 나돈다고 한다. 얼마나 신용이 떨어졌으면 정부의 핵심정책에 대해 이런 조롱까지 나오겠는가.

*** 사람 바꿔봤자 소용없어

위기 때마다 집권측의 단골처방이 국정쇄신이요 당정개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정개편이 예고되고 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사람을 바꿔야 국정쇄신이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껏 개편은 자주 있었어도 국정이 쇄신되거나 상황이 호전되는 사례는 별로 보지 못했다.

YS집권 말기 때 그렇게 자주 개각을 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못했고 DJ정부에서도 벌써 몇번째 개각.개편이 있었지만 오늘날 다시 이런 위기가 왔다.

요직의 얼굴만 바꾼다고 국정이 쇄신되거나 위기가 극복되지는 않는다. 위기를 초래한 정책.추진방식.스타일을 바꿔야 쇄신이 될 수 있고 그것이 개편을 하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개편은 대부분 사람얼굴만 바꾸는 개편이었다. 반짝 여론의 관심은 끌 수 있었지만 개편이 있고도 새 정책.새 스타일.새 분위기는 나오지 않았다.

당장 넉달 전의 8월개각을 생각해 보라. 개각이 있었다고 DJ정부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무슨 변화가 있었나. 바뀌기 전에도 DJ정부요 바뀐 후에도 똑같은 DJ정부일 뿐이다.

개편 후에도 달라지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DJ방식' 때문이다. DJ식의 리더십 추진방법.용인술(用人術).결정방식 등이 그대로인 한 휘하의 얼굴을 아무리 바꿔봐야 그 정부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 정부에서 위기가 왔다는 것은 DJ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편의 목적이 그 전과 다른 정부.여당을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DJ 자신의 변화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자신이 변해야 정부.여당의 다른 모습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DJ는 해박하고 명석한 인물이지만 그 개인의 한계가 곧 그 정부의 한계, 나아가 대한민국의 한계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잘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간부도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우수한 인물도 정부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여당에 DJ의 목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의견과 다양한 토론이 어울려 장엄한 교향악, 근사한 콤비네이션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약 3년간 우리는 DJ가 만기친재형(萬機親裁型)이며, 휘하의 간부들은 오로지 대통령 눈치만 본다는 말을 들어왔다.

노조나 민원인들까지도 바로 대통령 나오라고 외치는 판이다. 그리고 여당에선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민심을 모른다" "언로가 막혔다" 는 말이 나오고 직언을 무슨 평생소원처럼 말하곤 한다.

이번에 또 개편을 하고도 이런 'DJ방식' 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또 한번 하나마나한 개편이 될 게 뻔하다.

정말 달라진 정부, 새 활력이 나오는 정부를 만드는 개편이 되자면 DJ 스스로 그전 DJ 방식을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우선 이 '꼬붕' 대신 저 '꼬붕' 을 쓰고 가신을 쓰다가 범동교동계에서 고르는 식의 인사에서 벗어나 인재를 찾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

늘 같은 패거리.동향.아는 사람 중에서만 고른다면 일류보다는 2, 3류를 기용하기 쉽다. 범위를 넓혀 우리 사회의 주류.일류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 대통령 자신이 달라져야

그리고 믿고 기용했으면 그에게 전권(全權)을 주고 맡겨야 한다. 적임자라고 기용해놓고 다시 자기 눈치를 보게 만든다면 또 하나의 사람낭비.요직낭비가 되고 그런 체제에선 제갈공명이 와도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래 큰 인물이라야 명상(名相)도 거느린다고 한다.

대통령 자신은 조직과 팀워크의 가동을 감독하고 신상필벌(信賞必罰)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제도와 기구가 잘 움직이고 그 책임자들이 역할수행을 잘 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다.

대통령이 직접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대통령이 나라를 비우면 내정이 안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이번 개편은 사실상 DJ정권의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크다. 정말 개편다운 개편을 기대한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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