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대국장 밖의 풍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제4보 (61~76)]
黑.송태곤 7단 白.쿵제 7단

지난해 극적인 우승을 따냈던 조치훈9단은 첫판에서 유창혁9단을 누르고 16강에 진출했다. 일본기원 소속으로는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중국의 신예 왕시5단과 대국하며 가끔 일어나 옆 판을 본다. 조치훈을 따라 일본에서 온 기자는 지난해 말했었다. 그래도 믿을 사람은 노장들이지요. 일본의 노장들은 그래도 한 시대를 제패했거든요.

유창혁은 패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승부는 집중력의 싸움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떠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건만 모질게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여름 햇살처럼 밝고 강렬한 바둑으로 무수히 세계를 제패했던 유창혁에게 겨울의 긴 터널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의 휴식일에 이창호는 족구를 하며 지냈고, 중국선수들은 이곳(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 대거 내려온 한국의 젊은 기사들과 함께 격렬한 축구시합을 했다.

쿵제는 아무 운동도 하지 않았다. 구리(古力)가 근육질인데 비해 그는 사색형이다. 송태곤 역시 내일의 강적을 생각하며 조용히 보냈다. 검토실엔 한국의 10대 기사들이 잔뜩 모여 있다. 그들은 모니터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바둑을 골라 연구하고 있다.

강풍이 소리없이 스쳐간 이 판은 백이 앞선 가운데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쿵제가 68로 하변 흑을 공격해 왔을 때 송태곤은 다시금 귀를 잡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쫓기는 건 부아가 난다. 그래서 '참고도'처럼 흑1의 자살수로 귀를 잡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검토실은 안 된다는 의견이다. 송태곤 역시 꾹 눌러 참으며 중앙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