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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임러 크라이슬러 합병 이후 '최대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독일의 다임러 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1998년 합병해 탄생한 거대 자동차기업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독일측 사람들과 미국측 사람들간의 불화.반목으로 합병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경을 넘나드는 메가머저가 붐을 이루는 가운데 벌어진 이번 사태는 기업 풍토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기업간의 인수.합병(M&A)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3대 주주(지분율 4%)인 미국인 커크 커코리언은 27일(현지시간) "양사의 합병은 독일측의 음모에 따라 진행된 사기극" 이라며 "90억달러(약 10조6천억원)의 손해배상금 지급과 함께 합병을 원천 무효로 해달라" 는 소송을 미 델라웨어주 윌밍턴 연방지법에 냈다.

90억달러의 배상금의 내역은 ▶사기로 입은 피해 20억달러 ▶주가하락으로 인한 손실 10억달러 ▶징벌적 배상금 60억달러로 구성돼 있다.

커코리언은 소장에서 양사는 합병 당시 "대등한 관계의 합병" 이라고 주주들에게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크라이슬러를 집어먹으려는 다임러측의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임러의 의도를 알았더라면 당시 크라이슬러의 최대 주주(지분율 13.75%)였던 자신이 합병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랬다면 합병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임러는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소송" 이라며 커코리언을 비난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원이 설사 다임러가 주주들을 기만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합병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의 직접적인 빌미가 된 것은 이 회사의 유르겐 슈렘프 회장(독일인)이 지난달 30일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는 "합병 당시부터 크라이슬러를 다임러의 한 사업부문으로 둘 생각이었으나 크라이슬러측의 반발이 걱정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 고 고백했다.

이에 앞서 다임러 이사회는 지난 17일 실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크라이슬러 부문 사장인 제임스 홀든(미국인)을 전격 해임하고 디터 제셰(독일인)를 후임으로 임명, 미국측의 감정을 자극했다.

역시 미국인인 밥 이튼이 지난 1월 다임러의 공동 회장에서 물러난 데다 홀든 사장까지 해임되면서 크라이슬러의 경영권이 완전히 독일측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홀든 사장의 측근 인사들도 최근 한꺼번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새 경영진은 경비 절감을 위해 생산 라인을 일부 폐쇄하고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노조의 강한 반발을 샀다.

최근 크라이슬러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침체로 3분기에 5억1천2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4분기에도 적자가 예상되는 등 경영난이 심각한 상태다.

크라이슬러와 다임러 벤츠는 2차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각각 연합군과 독일군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앙숙 관계였다.

크라이슬러는 지난 80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리 아이아코카 회장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15억달러의 긴급 대출을 받아 기사회생한 바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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