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생진 '가난한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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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시인의 훈장처럼 달아주고

참아 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워서 시만 읽는다

- 이생진(71) '가난한 시인' 중

시는 가난 속에서만 나온다? 딱히 그럴 까닭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옛날부터 육신의 양식만큼이나 값진 영혼의 양식인 시를 씨뿌리고 거두는 시인의 곡간은 비어 있어야 제격인 것처럼, 가난이 시인에게 주는 훈장인 것처럼 됐다.

그래도 시인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 가난 속에도 남모르는 금덩이를 쥐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시 읽기의 행복에 가난을 잊을 수도 있다니 오직 고마울밖에.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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